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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18. 2020

[그빵사]47. 건포도 모카빵 (2)

오븐에서 갓 나온 빵 맛은 오마이 갓!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두 가지 선택 중에 내가 고른 것은 '한파를 뚫고 마트로 가서 강력분을 사 오기'였다.

이미 비스킷 반죽을 만들어놓았기도 했고, 건포도도 불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포기하기는 너무 아쉬웠다. 목도리에 패딩에 마스크까지 꽁꽁 싸매고 나갔는데도 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찬 바람을 쐬니까 기분이 훨씬 나아진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갖은 다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모카빵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에서는 계란까지 모두 다 넣어서 반죽을 했다. (살짝 긴장함)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난번 연유 크림빵 때처럼 반죽이 너무 질었다. 손에 계속 달라붙어 반죽하기 매우 힘들어서 가능한 만큼만 한 다음 불려놓았던 건포도를 건져서 물기를 제거하고 반죽에 넣었다. 반죽과 건포도가 섞이게 좀 더 치댄 다음 랩을 씌운 다음 한 시간 동안 발효를 해주었는데 부엌이 추웠는지 2배로 커져야 할 반죽은 하나도 부풀지 않았다. 베이킹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는 말이 겨울이 되고서야 실감했다. 따뜻했던 날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잘 됐던 반죽들이 추운 날엔 좀 더 세밀한 보살핌이 필요했다. 보일러를 뜨끈하게 틀은 방에다가 반죽이 든 보울을 가져다 놓고 설거지거리를 식기세척기에다가 넣고나서 나도 잠깐 쉬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검색창에다가 반죽기 가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베이킹은 역시 장비빨이야! 하면서 반죽기만 있으면 빵을 자주 해 먹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최소 50만 원대에서 백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을 보고 눈물을 한 번 닦고 앞으로도 제과를 더 많이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포기가 빠름) 방에서 1시간이 지난 반죽은 생각보다 많이 부풀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간은 많이 지체되어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제 곧 엄마께서 저녁을 만드실 시간이라 그때까지는 부엌을 정리해서 비워드려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을 해야만 했다.


반죽을 반으로 나누어서 밀대로 밀어 세로로 길게 핀 뒤 돌돌돌 말아서 럭비공 모양처럼 만들어주었다. 말랑거리는 촉감 때문에 반죽을 성형할 때가 제일 재밌다. 다음엔 냉장고에서 비스킷 반죽을 꺼내서 역시 반으로 나눠 얇게 핀 다음에 럭비공 모양의 빵 반죽을 이불처럼 감싸주었다. 이 상태로 바로 굽는 게 아니라 또다시 45분 숙성을 해 주어야 한다. 분명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한 베이킹은 6시 40분이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저녁을 먹고 난 후에 반죽을 가져와보니 겉에 둘러싼 비스킷 반죽은 조금 갈라져있었다. 원랜 더 많이 갈라져야하지만 이젠 '모르겠다~ 그냥 굽자!'라는 포기상태의 마음으로 오븐에 넣어주었다. 200도에서 23분을 구워 나온 건포도 모카빵은 의외로 제과점에서 보던 그 모카빵 모양과 비슷하게 되었다. 정말 신기했던 건 구울 때는 빵 냄새가 별로 안 났는데 오븐을 열자마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는 따끈하고 단단한 모카빵 한쪽을 집어서 빵 칼로 슥슥 자르는데 소리에서부터 그 바삭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속을 보니 건포도는 한쪽으로 쏠려있기는 했지만 몇 차례 위기가 온 과정을 생각했을 때 이만하면 아주 성공적이었다.



자르자마자 구경하고 있던 언니와 함께 빵 한쪽을 맛보는데 달콤한 비스킷 반죽과 함께 촉촉한 속, 그리고 새콤달콤한 건포도는 7시간의 노고를 잊게 만들었다. (오후 8시 20분이 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만든 빵이 전문가들이 만든 완벽한 빵 맛보다 좋을 순 없겠지만 오븐에서 갓 나온 뜨끈한 빵은 그 어느 것도 이길 수 없는 것 같다. 홈베이킹으로 직접 만들어먹으니 이런 빵 맛을 느낄 수 있는 거구나 하고 한동안 시들했던 베이킹에 대한 애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배가 불렀을 법도 한데 가족들 모두 건포도 모카빵을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다. 만든 두 개 중에 하나는 바로 다 먹고 나머지도 아버지께서 야식으로 반 정도를 드셨을 정도였다. (뿌듯 뿌듯) 맛있게 먹어주면 그것만큼 응원이 되는 게 또 없다.


제빵을 하는 건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너무 길고 힘들지만 오븐에서 바로 나온 빵을 입에 넣는 순간 모든 고됨을 잊게하고 다시 만들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 아마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내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다. 다음엔 어떤 빵을 만들어 볼까? 단팥빵도, 콘치즈 브래드도 다 만들어 보고 싶다. 제빵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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