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순댕 Dec 23. 2020

[그빵사]52. 솔티 캐러멜 롤케이크

괜히 걱정했네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애플파이의 성공 이후 사과조림이 들어간 애플 파운드케이크를 만들려고 레시피 영상을 찾던 중에 내 시선을 잡아끄는 썸네일 하나를 발견했다. 베이지색 크림이 가득 들어있는 롤 케이크 위에 윤기가 흐르는 진득한 갈색의 소스를 붓고 있는 '솔티 캐러멜 롤케이크'였다. 단짠의 정석이라는 수식어가 이 롤케이크를 단번에 이해시켜주는 것 같았다. 일단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있는데 난이도가 있어 보였지만 4번 정도 만들어 본 도지마롤과 전체적인 진행과정이 비슷해서 한 번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다만 제일 중요한 키 포인트인 마지막에 롤케이크를 코팅하듯이 붓는 갈색 소스인 캐러멜 글레이즈를 만들려면 '젤라틴'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안 해도 되긴 하지만 썸네일에서 반한 것은 주르륵 흘러내리는 캐러멜 소스라서 고민도 없이 젤라틴을 사러 나갔다. 집 근처에 베이킹 재료 상점이 있는걸 감사히 여기면서 대충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갔는데 가루 젤라틴만 팔고 있었다. 영상에서는 판 젤라틴을 사용했지만 판 젤라틴이든 가루 젤라틴이든 다 젤라틴이 아닌가 싶어 젤라틴 가루를 사 와서 바로 베이킹을 시작했다.


빵 시트를 만드는 건 도지마롤이랑 비슷한 듯 달랐다. 공정이 애매하게 조금씩 달라 더 헷갈려서 버벅 거렸지만 그래도 무사히 반죽을 만들어서 팬닝을 한 뒤 오븐에다가 넣었다. 노른자 반죽을 휘핑할 때 생각만큼 안 부풀어 오른다 싶더니 시트 표면은 매끈하게 나오지 않고 올록볼록하게 구멍이 올라왔다. 구움색이 난 쪽이 겉면이 되어야 하는데 울퉁불퉁한 게 보기가 싫어서 안쪽으로 뒤집어 사용하기로 했다. 그다음엔 캐러멜 생크림을 만들어야 했는데 만드는 방법이 굉장히 독특했다.


냄비에 설탕을 넣어서 갈색이 될 때까지 약불로 녹인 다음, 생크림에 소금을 넣고 30초간 전자레인지에 돌려 뜨겁게 만어서 불에서 내린 냄비에 넣으면 갑자기 김이 엄청나게 난다. 빠르게 주걱을 움직이면서 섞는데 간단한 거지만 왠지 엄청난 걸 만드는 것 같아서 신이 났다. 캐러멜 베이스를 체에 걸러서 차갑게 식힌 후 생크림에 넣고 휘핑을 하면 캐러멜 생크림이 완성된다. 유산지 위에 시트를 놓고 생크림을 바르고 둥글게 말아 냉장고에서 굳혀주었다. 남은 크림을 맛보았는데 진짜 눈이 번쩍 뜨이게 맛있었다. '단짠의 정석'이라는 말을 괜히 붙인 게 아니구나 싶었다. 크림이 이 정도인데 캐러멜 글레이즈까지 뿌리면 어떤 맛일까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저녁으로 언니, 엄마가 만들어주신 돈가스를 먹은 후에 슬슬 젤라틴 가루 사용법을 검색해보았는데 뭔가 알듯 말듯한 기분이었다. 젤라틴 가루의 5~6배 되는 뜨거운 물을 넣어서 녹인 다음에 굳혀서 사용하라고 하는데 굳힌다음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나와있지 않았다. 그냥 넣으면 되는 건가? 여전히 아리송한 기분을 안고 캐러멜 베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뜨거운 캐러멜 베이스에 투명하게 굳은 젤라틴을 넣고 섞은 다음에 통을 얼음물에 담가서 차갑게 식혔다. 드디어 썸네일에서 보았던 캐러멜 소스를 붓는 시간이 왔다. 냉장고에서 가져와 유산지를 벗겨낸 롤케이크를 식힘망 위에 얹고 아래에는 오븐 팬을 깔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진한 캐러멜 소스를 붓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세엣....! 촤르르륵...!"


"음...?"


연 노란색의 롤케이크는 캐러멜 소스를 붓자 주황빛에 가까운 연한 갈색이 되고 말았다. 쫀득해 보이는 갈색 소스는 다 어디로 간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구움색이 난 겉면을 안쪽으로 넣었던 것? 캐러멜 소스를 만들 때 설탕을 더 태웠어야 하는 것? 젤라틴 가루를 사용했던 것? 차갑게 식혔지만 겉면은 여전히 찐득한 시럽을 발라놓은 느낌이었다. 아쉽지만 이대로 잘라서 가족들이랑 먹기 시작했는데 반응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언니도 솔티 캐러멜 류를 밖에서 사 먹어 본 적은 있지만 이런 맛은 난생처음이라고 했고, 엄마는 물론 심지어 아빠까지도 내가 여태껏 했던 해왔던 베이킹 중에서 이게 가장 맛있다고 했다. 언니는 롤케이크를 만드는 게 힘들면 캐러멜 크림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할 정도였다. 모양은 뜻대로 안 나왔지만 다들 맛있게 먹어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사실 유튜브를 보면서 유명 제과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할 듯한 디저트 레시피들을 너무 자세히 알려줘서 사람들이 다 만들어먹고 안 사 먹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직접 만들어보니까 그것은 쓸 데 없는 걱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자세하게 알려줘도 따라 할 수가 없다. 만약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과점을 이미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또한 내가 어설프게 만든 것도 이렇게 맛있는데 진짜 전문가가 만든 건 어떤 맛일지도 궁금해졌다. 사 먹어 볼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오히려 영업 영상이 아닌가 싶다. 다음에 한 번 더 만들어보고 싶긴 한데, 파는 곳을 보게 된다면 사 먹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만큼 정말 맛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빵사]51. 애플파이(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