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순댕 Dec 22. 2020

[그빵사]51. 애플파이(2)

한 줄 한 줄 장인 정신으로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맥도널드에서 먹었던 식빵을 반 접은 듯한 직사각형의 애플파이 말고 제과에서 말하는 애플파이는 격자무늬로 뚜껑이 덮여있다. 그것이 애플파이의 시그니처 모습인데 백설공주가 만들었던 구스베리 파이는 반죽을 얇게 펴서 한 장으로 덮던데 애플파이는 꼭 격자무늬로 덮어야 하는지 궁금증이 생겨서 검색해 보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댓글을 보니 파이 뚜껑을 덮는 이유는 사과 필링이 타지 않기 위함이고, 구멍이 뚫려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과 필링에는 수분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수분이 빠져나갈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격자무늬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고 한다.


일단 구멍만 뚫려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애플파이 시그니처인 격자무늬 뚜껑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재료는 중력분, 버터, 설탕 등 생각보다 그리 특별한 게 없었는데 딱 한 가지 없는 게 있었다. 그것은 계피 가루였다. 옵션이고 선택사항이라고 적혀있긴 했는데 계피향을 좋아하는 나로선 계핏가루가 없는 애플파이는 애플파이가 아니었다. 계핏가루 하나 사러 밖을 나가기엔 너무 귀찮았지만 생각해보니 집 밖을 나가지 않은 5일째 되는 날이었으므로 바깥공기도 쐴 겸 동네 마트로 가서 계핏가루를 사 왔다.


제일 먼저 파이 반죽을 만들기로 했다. 중력분을 체친 다음 차가운 버터를 넣고 중력분을 함께 섞어가며 잘게 자르고 찬물과 설탕 소금을 섞은 물을 조금씩 넣어가면서 하나로 뭉치면 된다. 버터가 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많이 치댈 필요도 없어서 다른 반죽들 보다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파이 반죽은 냉장고에 넣어놓고 휴지 시키는 사이 사과 필링을 만들기로 했다.


프라이팬에 꿀과 설탕을 넣고 녹여서 카라멜라이징이라는 걸 해야 한다고 하는데 영상 색과 똑같이 맞추려다 보니 탄 내가 나기 시작했다. 영상에 보정이 들어갔거나 혹은 모니터에 따라 색이 다를 수도 있을 텐데 그 사실을 간과했다. 바로 깍둑 썰기한 사과를 넣고, 버터와 전분 그리고 시나몬 가루를 넣고 졸였다. 사과 필링을 조금 맛보니 뒤끝 맛이 약간 씁쓸했다. 카라멜라이징 할 때 탔던 게 분명한 것 같다.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서 그대로 사과 필링을 넣기로 했다.


30분이 지나 파이 반죽을 꺼내서 밀대로 밀려고 하는데 반죽이 너무 질어서 손에 다 달라붙었다. 댓글을 보니 나와 같은 현상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대댓을 보니 반죽할 때 버터가 녹았을 경우 이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이걸 다시 하긴 귀찮아서 그냥 진행하려고 중력분을 겉에 코팅하듯이 발라주었더니 다행히도 반죽을 미는 게 가능해졌다. 영상에서는 지름 16cm 원형 타르트 팬을 사용하지만 집에는 8cm 타르트 팬이 있어서 4개를 준비했다.  반죽을 4등분 해서 타르트 팬에 하나씩 바닥을 깔고 포크로 콕콕콕 찍어준 뒤에 만들어 놓은 사과 필링을 얹어주었다. 그다음 남은 반죽을 하나로 뭉치고 밀대로 가로로 길게 민 다음 너비 1cm 넓이로 잘랐다. 사과 필링까지 얹은 타르트 틀 위에 세로로 5줄 정도 조금씩 간격을 띄어서 올려놓고 새로운 한 줄을 가로로 올려놓고 세로에 있는 줄을 하나는 아래로, 하나는 위로 번갈아 가며 놓았다. 그렇게 가로도 4-5줄을 반복해서 격자무늬를 만들었는데 하나 할 땐 너무 재밌고 예뻐 보였는데 4개를 하려니까 힘들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타르트 반죽 위에 계란물을 바르고 20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30분이 지나서 꺼내면 윤기가 자르르르 흐르는 황금색 애플파이가 완성이 된다. 모양도 정말 예쁘게 나와줬는데 맛도 살짝 탄 사과 필링 때문에 뒤끝이 씁쓸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맛있었다. 파이 반죽도 마치 겹겹이 쌓은 바삭한 페이스트리를 먹는 것 같았다.

애플파이를 반으로 잘라 재택근무하는 언니 방에 한 접시를 넣어주고, 한 접시는 따뜻한 커피를 내려서 함께 먹으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집에 사과가 있는 걸 보고 애플파이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여태까지 사과는 그냥 깎아먹는 사과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베이킹 재료가 되어서 애플파이, 사과 파운드케이크 등 다양한 것들로 변할 수 있는 것 또한 너무 신기했다. 또한 그로 인해 어린 시절 추억까지 떠올리게 되다니 베이킹 덕분에 내 삶이 조금 더 풍성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빵사]50. 애플파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