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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28. 2020

[그빵사]57. 크림 단팥빵

누가 하고 있으면 나도 하고 싶어 지는 이상한 심리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엄마께서 제일 좋아하는 빵은 단팥빵을 만들어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재료를 주문할 때 팥 앙금도 함께 주문했었다. 이주 전쯤에 단팥빵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이번엔 드라이 이스트가 떨어져서 만들지 못했다. 이번에 크리스마스 케이크 재료를 사러 가면서 무려 500g짜리 드라이 이스트를 사 왔다. 당연히 이렇게 큰 걸 살 생각이 없었는데 베이킹 재료 샵에서 500g짜리 밖에 없다고 하니 인터넷으로 이것 하나 시키기에는 배송료가 붙고 대형 마트를 가자니 버스를 타야 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큰 걸 사 왔다. 보통 한 번 빵 만드는데 드라이 이스트가 4~6g 밖에 안 들어가는데 100번 만들 이스트가 내 손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들고 오면서도 환불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그대로 이스트를 가지고 집에 왔다.


재료는 다 준비되어있고 당장이라도 할 것 같았지만 때 마침 엄마께서 마트에서 크림빵과 호빵을 사 오시는 바람에 단팥빵 만들기는 잠정 중단이 되었었다. 점점 단팥 앙금이 잊혔을 무렵 크리스마스 당일에 부쉬 드 노엘을 다 먹고 할 일 없이 뒹굴거리고 있을 때 마침 요리 방송을 보게 되었다. 아침에 부쉬 드 노엘을 만들었고 해서 다른 베이킹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요리 방송을 보니 왠지 나도 빵이 만들고 싶어 졌다.  누군가가 하는 모습을 보면 따라 하고 싶어 지는 이유는 뭘까? 벌떡 일어나서 단팥빵을 만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식탁이 아닌 거실에서 요리 방송을 보면서 천천히 만들어보고 있는데 역시나 반죽은 너무 힘이 들었다. 힘이 부족한지 반죽이 제대로 뭉쳐지지 않아서 옆에서 신문을 보고 계시던 아빠 찬스를 써보기로 했다. 위생장갑과 함께 반죽이 담긴 보울을 드리니 아무 말씀도 없이 신문을 보면서 열심히 반죽을 해 주셨다.


중간에 버터를 넣고 반죽을 15분 정도 더 해 주셨다. 아빠는 반죽이 끝난 후에 겉옷을 두 개나 벗으시더니 그대로 바닥에 누우셨다. 제빵이 힘든 거라니깐요~. 남은 496g 드라이 이스트를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유통기한은 22년까지로 넉넉하니 그때까지 베이킹을 하고 있다면 아마 반죽기는 사지 않았겠나 싶은 바람을 미래의 나에게 날려 보냈다. (시그널 보낸다) 아빠께서 열심히 만들어주신 반죽을 따뜻한 방 안에다가 넣고 2배로 부풀 어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2배로 커진 반죽을 가져와 6등분으로 나눠서 동글동글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쫄깃쫄깃해진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오븐 팬 위에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올린 다음 랩을 씌워서 다시 10분간 발효를 한 뒤 손으로 눌러 가스를 뺀 후 이제 팥 앙금을 넣을 차례였다. 나에게 장비병 유전을 물려주신 아빠께서 사두셨던 아이스크림 스쿱을 꺼내와서 납작하게 핀 반죽 위에 팥 앙금을 한 스쿱 떠 올린 다음 반죽으로 조물조물 감싸 준 뒤 다시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40분가량 발효를 해주고 마지막으로 구움색을 내는 계란물까지 발라주는 걸 잊지 않았다.


낮에 시작한 단팥빵 만들기는 저녁이 되어서야 오븐에 넣을 수 있었다. 밑바닥이 살짝 타긴 했지만 구움색은 아주 먹음직스럽게 나왔다. 빵을 식힌 후에 어제 부쉬 드 노엘을 만들고 남았던 휘핑크림을 가져와서 빵 안에다가 넣기 시작했다. 6개의 단팥빵 중에 3개는 크림 단팥빵으로 만들고, 3개는 그냥 단팥빵으로 두기로 했다. 이제 드디어 맛 볼 차례가 왔다. 먼저 단면을 보고 싶어서 반으로 갈랐더니 아래에는 흰색 크림이 가득하고 위에는 단팥 앙금으로 층을 이뤘다. (단팥이 가운데나 아래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언니랑 반씩 나눠서 먹어보니 달달한 휘핑크림과 고소한 단팥의 합이 앙버터(단팥+무염버터) 못지않게 너무나도 조화로웠다. 크림을 3개만 넣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저녁을 먹고 난 후라 다들 반 개씩만 먹고 다음날 먹었는데 아침에 먹은 단팥빵은 빵 부분이 살짝 딱딱해졌다.  그리고 크림을 넣지 않은 단팥빵 단면을 잘랐을 때 단팥이 윗부분에만 조금 들어 있어서 엄마께서는 단팥을 더 많이 넣어달라고 주문(?)을 하셨다. 제과점에서 먹어보던 단팥빵처럼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숙제처럼 남아있었던 단팥빵을 만들어서 속이 다 후련했다. 언젠가 또 베이킹에 심드렁해진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빵 만드는 브이로그 영상 같은 걸 찾아봐야겠다. 그때도 왠지 따라 하고 싶어 지지 않을까싶다.



윤기가 촤르르 흐르는 단팥빵을 만들어봤어요.

크림이 묽어서 사진은 예쁘게 나오진 않았지만ㅎㅎㅎ 맛은 정말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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