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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Jan 01. 2021

[그빵사]58. 새해 첫 베이킹

다시 한번 도오전!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베이킹 휴업 선언을 내린 지 3일이 지났다.


아빠께서 매번 브레드 박스를 보시면서 오늘은 빵이 없네... 하고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았더니 기분이 좋았다. 바쁜 일을 대충 끝내 놓은 대망의 1월 1일! 새해 첫 베이킹으로는 '솔티 캐러멜 롤케이크'를 골랐다. 이걸 고른 이유가 있었다. 베이킹 휴업 선언을 하기 바로 전날, 2주 전에 만들어봤던 솔티 캐러멜 롤케이크를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워낙 반응이 좋았던 터라 앙코르 베이킹의 (웃음) 느낌으로다가 해볼 생각이었다.


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네이비 색 바탕에 하얀색 얇은 줄무늬가 있는 앞치마를 입고서 롤 시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뚝딱 만든 롤시트를 오븐에서 꺼내 가장자리 유산지만 뜯어서 식혀주는 사이 솔티 캐러멜 크림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캐러멜 소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먼저 냄비에다가 설탕을 녹여야 한다. 몇 분이 지나자 설탕이 액체로 변한 사이 다른 걸 신경 쓰느라 금세 설탕이 타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새까맣게. 한숨소리를 짧게 낸 뒤 냄비에 물을 담아 두고 다른 냄비로 다시 설탕을 녹였다. 냄비 앞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설탕이 녹기를 기다리면서 냄비를 한 번씩 돌려주었다. 살짝 갈색이 되었을 때 불에서 내려야지 남은 열기로 적절하게 캐러멜 라이징이 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다가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린 소금 넣은 생크림을 부으면 수증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는데 이때 정말 뜨거우니 오븐 장갑을 끼고 해야 한다. (하마터면 델 뻔!) 실리콘 주걱으로 열심히 섞어 준 다음 체에 걸러 놓았다. 아직 뜨끈뜨끈했지만 시트가 식기 전에  크림을 발라야 하니 마음이 급해서 생크림에 캐러멜 소스를 넣고 핸드믹서 전원을 켰다. 캐러멜 소스가 딱딱하게 굳더니 다다다닥!! 하면서 사방팔방에 휘핑크림이 튀겼다. 급하게 전원을 끄고 보니 얼굴과 앞치마에 크림이 가득 묻었다. (부글부글) 이래서 다들 앞치마를 입는 거구나... 언니에게 감사를 하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일단 부엌을 치우기 시작했다. 


다 치운 다음 잠시 소파에서 누워서 다시 해? 말아? 고민 끝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캐러멜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롤 시트는 식었기에 천천히 작업해보기로 했다. 레시피 영상을 다시 보니 캐러멜 소스를 '실온'에서 식히라고 적혀있었다. '그래, 너무 급하게 넣었던 것 같아.' 하면서 세 번째 캐러멜 소스를 만들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만져보았을 때 미지근한 정도로 식었을 때 생크림에 넣고 핸드믹서 스위치를 켰다. 다시 캐러멜은 덩어리 지면서 굳었고 사방팔방 크림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아오오오오옷-!!!!"


마치 손오공이 초사이언으로 변신하듯이 양 주먹을 꼭 쥐고 소리를 쳤다. (나중에 들어보니 거실에서 티비를 보시던 아빠께서 소리칠 때 무서웠다고 하셨다.) "안 해... 나 안 해..." 결국 그날은 캐러멜이 담갔다 뺀 크림의 롤케이크를 만들었다. 이것도 맛이 있었긴 했지만 세 번이나 캐러멜 소스를 실패하면서 갑자기 피곤함이 확 몰아쳤다. 설상가상 지금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이 일들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지만 남는 시간에 베이킹을 하는 것도, 그빵사 연재를 하는 것마저도 일단 마음이 불편하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조급한 마음이 베이킹에서도, 글에서도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나란 사람은 아직까지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함께 맞추는 게 쉽지 않는구나 하고 그냥 먼저 끝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한 뒤 다음날부터 그빵사 휴재 및 베이킹 휴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1월 1일. 다시 심기일전해서 세 번이나 망쳤던 솔티 캐러멜 롤케이를 다시 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캐러멜 소스 및 롤케이크 만드는 영상을 거의 다 본 것 같다. 레시피 영상이랑 다 똑같이 했는데 뭐가 문제일까 찾아보다가 여러 영상을 보던 차에 내가 보던 레시피 영상과는 다른 자막이 하나 있었다. '캐러멜 소스는 냉장 보관해서 차갑게 해서 사용하세요.' '차갑게 해서 사용하세요' '차. 갑. 게' 차갑게..? 차갑게에에에에???? 첫 번째 보던 영상에선 실온 보관이라 해서 냉장고에 넣으면 굳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엔 이 방법으로 해보되 혹시 몰라 일단 캐러멜 소스를 제일 먼저 만들어놓고 시작하기로 했다.


바로 수증기 쇼를 선보이며 캐러멜 소스를 만들고 체에 거른 후에 랩을 씌워서 차가운 베란다에다가 놓고 롤 시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븐에 넣고 나서 캐러멜 소스를 휘저어보았더니 굳기는커녕 매끈한 캐러멜 소스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실수를 한 게 생각이 났다. '솔티 캐러멜'의 '솔티'는 짭조름한 맛을 내는 소금이 들어가는 것인데 제일 중요한 소금을 깜박하고 말았다. 원랜 생크림에다가 소금을 먼저 넣고 녹인 설탕에다 넣어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넣어도 될까 싶어서 소금을 한 꼬집 넣고 휘저었다. 오븐에서 시트를 꺼내고 나서 이제 캐러멜 소스를 휘핑크림에 넣고 휘핑하는 일만이 남았다. (부쉬 드 노엘을 만들고 남은 휘핑크림이 있어서 생크림 대신 휘핑크림을 사용하기로 했다.) 앞치마를 몸이 가리게 다시 입은 뒤, 작업대 위를 모두 치우고 캐러멜 소스를 반만 넣었다. 언니는 좋은 구경이 나올까 기대하며 핸드폰으로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언니가!) 핸드믹서를 넣고 조심스레 스위치를 올렸는데 정말 다행히도 캐러멜 소스는 휘핑크림에 무사히 잘 섞였다. 언니의 힘 빠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캐러멜 소스는 차갑게 해서 넣어야지 덩어리가 지지 않는구나 하고 4번의 시도 끝에 깨달았다.


무사히 롤을 돌돌 마는 것 까지 마치고 냉장고에다가 크림을 굳히기 위해 넣어두었다. 롤시트의 가장자리를 잘라낸 것을 남은 크림에 찍어서 맛보았더니 어째 뒤끝 맛이 좀 씁쓸했다. 너무 캐러멜 라이징이 돼서 그런 건가? 아님 소금을 뒤늦게 넣어서 그런 건가? 검색해보니 생크림이 상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랬는데 나는 유통기한이 넉넉히 남은 뚜껑이 있는 휘핑크림을 잘 닫아서 냉장고에 보관했기에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 캐러멜 라이징에 한 표를 던졌다. 4시간가량 지난 후, 점심을 먹고 입이 심심할 때쯤 롤케이크를 꺼내서 조금씩 잘라 가족들에게 주었다. 모양은 크림이 가득하니 참 예쁘게 나왔다. 나도 자리에 앉아 한 조각을 먹기 시작했는데 맛은 있었으나 뒤끝 맛이 씁쓸한 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특히나 이번엔 무사히 캐러멜 크림도 만들었는데 말이다. 언니는 자기가 좋아하는 씁쓸한 달고나 사탕 같다며 맛있다고 해주니 그래도 다행힌가 싶었다. 지난번 만들 때 사방팔방으로 튄 크림을 보면서 다신 안 하고 싶었는데 이번엔 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푹 쉬고 난 뒤 다시 한 베이킹은 너무나도 재미있었다.다음엔 휘핑크림 말고 생크림으로 사서 마지막에 뿌려주는 캐러멜 글레이즈까지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연속으로 만들면 가족들이 질릴 수 있으니까 솔티 캐러멜 롤케이크가 다시 생각날 때쯤에 다시 도전해 보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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