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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Jan 02. 2021

[그빵사]59. 애플 크럼블 케이크

오늘은 뭐 먹지?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인생 최고의 난제 '오늘은 뭐 먹지?'가 식사는 물론 베이킹에도 전염이 되었다. 요즘의 나에게  '오늘 베이킹은 뭐하지?'는 최고로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침에 만둣국을 먹고 베이킹을 무얼 할까 고민을 하다가 2시에 가까워졌다. 부모님과 언니는 외출해서 나만의 아늑한 베이킹 시간이 주어졌는데 이대로 날릴 순 없다 싶어서 핸드폰을 켜서 본격적으로 베이킹 레시피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번 애플파이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사과+시나몬을 활용한 베이킹은 뭐가 있을까 검색하다가 '애플 크럼블 케이크'를 발견했다. 원형 팬에 파운드케이크 반죽을 깔고 사과 조림을 올린 후 소보로 같은 느낌이 나는 크럼블 반죽으로 덮는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관심이 가긴 했으나 이걸 하려면 일단 계란과 버터를 실온에 꺼내놓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서 그냥 간단한 얼그레이 마들렌을 하려고 베이킹 도구들을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땐 귀찮았는데 막상 도구들을 꺼내놓고 나니 새로운 베이킹이 하고 싶어 졌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foot in the door라는 것인가!) 그래서 관심이 갔던 '애플 크럼블 케이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계란과 버터를 계량해서 그릇에 담아 랩을 씌워 집 안에 따뜻한 곳을 찾아서 내려놓고 사과 조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과를 슬라이스 해서 썬 것을 설탕과 시나몬가루, 그리고 레몬즙을 넣고 졸여야 하는데 레몬즙이 없어서 맛은 좀 떨어질지언정 생략하기로 했다. 레몬즙이 생각보다 소량으로 쓸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생 레몬즙을 짤 수 없으니 액체로 된걸 다음에 마트 갈 때 사놓기로 했다. 사과조림을 그릇에다가 옮긴 후 반죽을 만들려고 보니 원형 팬 2호(18cm) 배합 레시피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원형 팬 1호(12cm)라서 모든 재료들을 *1.44 나눠서 계산을 했다.

*유명 베이킹 유튜버 자도르님이 알려준 계산법으로 원형 팬 1호(12cm)를 2호(18cm)로 바꿀 경우 재료를 1.44배를 해주면 된다고 한다. 지금은 반대의 경우므로 1.44로 나눠주었다.


말랑말랑한 버터를 푼 뒤 설탕, 계란,  박력분+베이킹파우더를 차례대로 넣고 섞어주면 반죽이 뚝딱 만들어졌다. 이제는 윗면에 올릴 소보로 같은 크럼블 반죽을 만들 차례였다. 버터에 설탕, 아몬드 가루, 시나몬 가루, 박력분을 넣고 핸드믹서로 버터를 잘게 부수면서 가루류에 섞으면 되는 건데 핸드믹서를 켜자마자 온 작업대와 앞치마에 가루가 튀어 날리기 시작했다. (솔티 캐러멜의 악몽이 떠오름) 영상에서 보면 부드럽게 잘 섞이던데... 너무 날려서 손 거품기로 해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많이 튀지 않도록 보울을 껴안아 몸으로 장벽을 만들면서 핸드믹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섞이긴 섞이는데 어째 작업대 위로 날아오르는 가루가 꽤나 많은 것 같았다. 대충 섞였을 때 심신 안정을 위해 그만하기로 하고 원형 팬을 가져왔다.


팬에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먼저 주르륵 붓고 주걱으로 정리를 해 준 뒤에 사과 조림을 골고루 올려 주었다. 마지막으론 부슬부슬한 크럼블 반죽을 사과 조림을 덮는 느낌으로다가 뿌려준 뒤 (양이 적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오븐에서 무려 45분간 구워주었다. 레시피 영상에선 50분이었지만 틀이 작으므로 45분을 구운 뒤에 꼬치 테스트(꼬치를 넣어서 묻어 나오면 반죽이 덜 구워진 것)해보고 나서 잘 구워진 것 같아서 오븐에서 뺐다. 30분 동안 틀에다가 그대로 놓으라고 해서 기다리는데 사과의 새콤함과 쿠키 같은 고소함의 냄새가 온 집안에 폴폴 퍼졌다. 점심을 먹지 않아서 너무 배고픈데 냄새의 유혹을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때 마침 언니가 사 온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난 후 틀에 있던 케이크를 꺼내서 식힘망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옆면을 두른 유산지를 떼어내는데 밖에서 사 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케이크를 먹기 편하게 6조각으로 잘라준 뒤 브레드 박스에 옮겨 담고 나서 도마에 떨어진 크럼블을 조금 주워 먹으니 생각보다 너무 달달하고 맛있었다. 아까 핸드믹서를 돌릴 때만 해도 크럼블은 두 번은 못 만들겠다는 생각이 바뀔 만큼 맛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부모님께서 애플 크럼블 케이크를 드시자마자 바로 '음!'이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뿌듯) 특히나 위에 뿌린 소보로 같은 크럼블이 굉장히 달콤하니 맛있다고 하셨다. 나는 점심을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 딱히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부모님이 맛나게 드시는 걸 보고 조금 먹어보았는데 크럼블은 물론이오, 사과조림도 중간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하게 했다. 크럼블 케이크도 파운드케이크만큼이나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블루베리, 바나나 등을 넣은 크럼블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데 다른 재료로 한 번 더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베이킹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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