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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백순댕 Jan 09. 2021

[그빵사]66. 발효 없는 모카빵

대략 30분 컷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점심시간 즈음에 언니가 베이킹을 해달라고 졸랐다.

달달한 게 먹고 싶다면서 간식으로 먹을만한 것을 원했다. 어제 만들고 마지막 남은 내 몫의 초코칩 쿠키를 먹으면서 (그 많던 쿠키 어디로 갔나) 뭐가 좋을지 한 번 고민해봤다. 지금 먹고 있는 쿠키가 너무 달았기 때문에 언니가 요구한 달달한 무언가는 당기지 않았고 슈크림은 어떠냐는 언니의 질문에 집에 생크림이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없다는 답을 했다. 뭐가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건포도를 넣은 모카빵이 갑자기 떠올랐다. 하지만 길고 긴 발효시간과 너무나도 힘든 반죽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모카빵 레시피 영상 중에 '발효 없이 만드는 모카빵'을 하나 발견을 했다.

발효가 없다고? 과연 이게 가능한 것인가 하고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2배속으로 한번 쭉 보았다. 비스킷 반죽과 빵 반죽을 따로 만드는 것은 동일한데 빵 반죽에 이스트도 넣지 않고 밀가루도 강력분이 아닌 중력분을 사용했다. 빵이라기보다는 파운드케이크 같은 느낌인 건가? 일단 재료도 다 있겠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겠다 싶어서 점심 먹기 전에 후다닥 만들어 보기로 했다. 비스킷 재료를 계란, 녹인버터, 설탕, 소금, 커피물 그리고 중력분을 넣고 다 섞으면 완성이 된다. 빵 반죽 재료는 비스킷과 동일한 재료에 베이킹파우더와 우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건포도를 추가로 넣고 섞으면 된다. 한마디로 말해 다 때려 넣고 섞으면 끝이었다. 만들면서도 이게 된다고? 진짜 이러면 끝이라고? 그렇다면 전에 몇 시간씩 발효를 해서 빵을 구웠던 이유는 뭐지? 온갖 생각을 하면서 반죽을 열심히 섞어 주었다.

오븐 팬을 가져와서 빵 반죽을 네 등분해서 옮기는데 모양을 예쁘게 잡아보려고 위생장갑을 끼고 했다가 워낙 반죽이 질어서 다 달라붙는 바람에 위생장갑은 버리고 영상처럼 스크래퍼와 주걱으로 오븐 팬 위에 길쭉한 럭비공 모양으로 형태를 잡았다. 그리고 그 위에 비스킷 반죽을 똑같이 4등분 나눠서 빵 반죽 위에 거의 바르듯이 올려주었다. 모양은 확실히 투박했지만 2시 41분에 시작한 베이킹이 3시 13분에 끝난 거 보면 이건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난번엔 무려 7시간이나 걸렸는데 말이다. 중간에 강력분이 떨어져서 마트에 사 온 것과 발효가 잘 안되어서 추가 발효를 했던 시간을 빼도 적어도 5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30분 만에 끝날 일이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다가 넣고 25분 타이머를 맞춰놓았다.

한파경보가 내려진 오늘 차가운 베란다에 있는 오븐은 마치 전기밥솥처럼 엄청난 연기를 뿜어냈다. 20분쯤 지났을까 확인해보는데 하단 열이 강했는지 밑바닥이 타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바닥에 가깝게 있던 오븐 팬을 중간으로 옮기고 상단 열선만 킨 뒤 (열선은 상, 하단 두 개 있다.) 권장 시간대로 5분을 더 구워주었다. 오븐에서 꺼낸 모카빵 4개는 바로 식힘망 위로 올려서 식혀주었는데 모양은 팬닝 했던 모습보다 더 퍼져서 그리 예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모카빵 같은 느낌이 나긴 했다.

4등분으로 잘라서 언니랑 나랑 한 조각씩 먹어보았는데 처음 먹었을 때는 약간 심심한 느낌이었다. 특히 커피 향이 많이 나지 않아서 언니가 참 아쉬워했다. 오직 여기서 맛이라고 느낄 수 있는 건 새콤한 건포도뿐인 것 같았다. 음.. 역시 사람들이 발효를 해서 먹는 이유가 있구먼... 시간과 정성은 확실히 티가 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시간 후쯤인 지금 글을 쓰다 보니 출출해져서 모카빵을 조금 잘라서 먹어보았는데 아까보다 훨씬 촉촉해지고 풍미가 더 좋아졌다. 비스킷 반죽이 더 달콤해진 느낌이었다. 확실히 빵보다는 스펀지케이크 같은 느낌이 더 강한 건 똑같았지만 다음에 다시 모카빵이 먹고 싶으면 오늘 만든 발효 없는 모카빵을 선택할 것 같다. 역시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쉽고 간단한 게 최고야! (이스트 496g 남았는데...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