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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Jan 31. 2021

[그빵사] 88. 초코 롤케이크

추억의 포켓몬빵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띠부띠부씰이 들어있는 포켓몬스터 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 엄마와 함께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요즘 아이들이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산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챙겨서 문제라는 식의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획 쳐다보시면서 "너 같은 애들이 많네"라고 말씀하셨다. 냉동고에 뜯어놓은 포켓몬빵이 4개 정도 쌓여있는 것이 기억이 나면서 아주 뜨끔했다. 먹기도 많이 먹었지만 남은 것도 많은 것이었다. 포켓몬스터 빵 중에 좋아했던 건 '벗겨먹는 고오스' 초코빵과 로켓단이 그려져 있는 '초코 롤'이었다. 초코 빵은 자주 먹어도 (그중에선) 그나마 질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추억을 잊고 지내다가 엊그제 유튜브에서 '로켓단의 초코 롤 만들기'라는 부제를 가진 영상을 발견해서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클릭을 해보았다. 내가 자주 만드는 롤케이크를 기반으로 초코 시트와 초코크림을 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롤케이크 하면 열 번도 더 만들어봤지! 하면서 만들어보기로 했다가 어젠 계란이 떨어져서 만들지 못했는데 콘플레이크 쿠키를 만들고 있는 도중 엄마께서 계란을 한 판 사 오셔서 오늘은 만들 수가 있었다.


초코 롤은 제일 먼저 안에 넣을 초코크림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초콜릿과 휘핑크림을 섞은 뒤 전자레인지로 녹인 후에 나머지 휘핑크림을 추가하면서 섞은 것은 식혀서 휘핑을 해야 해서 먼저 만들어서 냉장고에다가 넣어두었다. 이제 롤케이크 시트를 만드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공립 법도, 별립법도 아닌 또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제74화 모카 롤 케이크 참고) 새로운 방법은 '반 별립법'이라는 것이었다. 계란을 노른자 흰자로 나눠서 노른자에 설탕과 소금, 박력분, 코코아 가루를 넣고 손 거품기로 노른자 반죽을 만든 뒤 흰자는 설탕을 넣어 머랭을 만들어 두 개를 섞는 방법이었다. 얼핏 보면 별립법과 비슷해 보이지만 별립법은 노른자도 휘핑해줘야 하는데 반 별립법은 노른자는 그냥 섞기만 하면 되기에 훨씬 간단해졌다. 또한 공립 법은 전란(노른자+흰자)을 한 번에 풀어서 중탕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반 별립법은 최대한 간단하게 롤시트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공정하나 줄여보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홈베이커 1인) 노른자 반죽을 만들고 머랭을 세 차례에 나눠서 섞는데 오래 섞으면 거품이 죽는다고 해서 최대한 빠르게 섞고 유산지를 깐 오븐 팬에 팬닝을 해 주었는데 너무 대충 섞었는지 군데군데 흰 머랭이 보였다. (아이고) 그렇다고 이미 팬닝 한 반죽을 다시 꺼내서 섞을 수는 없어서 이대로 구울 수밖에 없었는데 오븐 안에서 울퉁불퉁 난리 난 롤시트를 볼 수 있었다. 원래는 반죽이 일정한 높이로 빵실하게 부풀어 오른 뒤 가라앉는데 이번엔 척박한 모래밭에서 군데군데 바위가 솟아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안돼에에에)


그나마 다행히도 오븐에서 꺼낸 롤시트는 바위보다는 좀 작은 모래알만큼만 울퉁불퉁해졌다. 식힘망 위로 옮겨놓고 이제 초코크림을 꺼내와서 밑에 얼음물을 받치고 휘핑을 하기 시작했다. 초코크림은 생각보다 거품이 빨리 올라오지 않아서 초고속으로 보울을 기울여서도 해보고 돌려서도 해보고 꽤나 오랜 시간 핸드믹서를 돌려주었더니 서서히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휴) 아주 뻑뻑하게 크림을 만들어주고 유산지를 뗀 롤시트 위에 차분히 발라주었다. 그동안 만들었던 도지마롤에 비해서 롤시트도 얇고 들어가는 크림도 적어서 마는 것도 훨씬 쉽게 쉽게 할 수 있었다. 이제 유산지로 감싼 후 냉장고에서 넣어서 굳혀주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글을 쓰기 한 시간 전에 가요 시상식을 보면서 냉장고에서 롤케이크를 가져왔다. 감싼 유산지를 떼고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빵칼로 가장자리를 잘랐다. 그동안 만들었던 도지마롤은 가운데 크림이 동그랗다면 이번 초코 롤은 회오리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같은 롤케이크 종류였지만 또 다른 느낌이 났다. 디카페인 커피를 따뜻하게 뽑아 온 뒤 한 모금 마시고 그다음 초코 롤을 포크로 한 조각 먹었더니 그 시절 먹었던 포켓몬스터 초코 롤 맛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만 초코크림을 만들 때 초콜릿이 덜 녹았는지 군데군데 덩어리가 씹히긴 했다. 그래도 처음 시도해본 반 별립법으로 만든 시트가 별립법과 공립 법으로 만든 시트와 비교해서 먹는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모양은 안 예뻤을지언정) 앞으로 반 별립법으로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음에 기뻤다.


롤케이크는 도지마롤인 생크림 롤케이크부터 시작해서 부쉬 드 노엘(초코 시트+생크림), 솔티 캐러멜, 모카 크림 그리고 초코 롤케이크까지 5가지를 해 보았는데 하나같이 다 맛있고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롤케이크를 최대한 간단하게 만드는 나만의 고유한 레시피를 정리해서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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