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를 공식화해보기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나서 부모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부모님께서 아침으로 빵을 즐겨 드신다는 것이었다. 엄마께서는 원래 아침을 안 드셨던 것 같은데 요새는 커피와 함께 쿠키를 드시지 않나 아빠께서는 무조건 밥을 외치시는 분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우유와 함께 마들렌을 드시는 걸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그간 함께 살았던 세월이 무색해질 만큼 낯선 모습이었다. 특히나 아빠와 마들렌이라는 두 단어가 붙어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그동안 없어서 못 드신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한동안은 메인 베이킹을 하고 나서 가족들의 아침을 위한 마들렌을 따로 구워놓기도 했었는데 두 가지 베이킹은 너무 힘들어서 몇 번 하다 말았다. 오늘은 매번 굽던 마들렌 대신 오랜만에 아침용 파운드케이크를 구워보기로 했다.
지난번 유튜브를 보다가 파운드케이크에 대한 귀여운 유래를 보게 되었다. 파운드케이크는 재료를 '1파운드'씩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운드' 케이크였구나! 베이킹을 시작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만들다가 요즘은 레시피를 찾아보면서 그것이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고는 한다. 피낭시에나 부쉬 드 노엘같이 꽤나 재밌는 얘기들을 보다 보면 그냥 만들 때보다 훨씬 베이킹이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파운드케이크와 같이 재료가 모두 1파운드씩 들어가서 파운드케이크라는 이야기를 보고 나니 이름처럼 재료들을 모두 동률로 넣어서 만들어보고 싶은 도전 정신이 솟구쳤다. 물론 1파운드는 대략 453g 정도라서 1파운드씩을 넣을 순 없지만 (계란 한 개의 무게는 55g 정도로 보통 파운드케이크에는 계란 2개를 넣어서 만든다.) 계란 무게와 똑같은 양으로 다른 재료를 계량해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 방법은 마들렌 때도 똑같이 사용하고 있기는 한데 공정에서 다른 점이 있다. 마들렌은 버터를 녹여서 가장 나중에 넣고 반죽이 완성된 후 1시간의 휴지 시간이 필요한 반면 파운드케이크는 버터를 제일 먼저 핸드믹서로 풀어 크리미화하고 별도의 휴지 시간 없이 바로 구우면 된다. 맛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파운드케이크를 만들 생각이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계란을 2개를 풀어서 (하나는 쌍란이 나왔다. 럭키!) 무게를 잰 뒤 버터도 동일한 무게로 잘라서 랩을 씌운 뒤 따뜻한 방 안에다가 넣어두었다. 나 포함 우리 가족들이 제일 좋아하는 얼그레이 찻잎을 넣은 얼그레이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유튜버 자도르 님의 [실패 없는 완벽한 파운드케이크 만들기] 영상을 기본 베이스로 삼아 박력분에 얼그레이 찻잎을 갈아 넣고 다른 영상을 참고하여 얼그레이 아이싱을 뿌리기로 했다. 기본 레시피에서 아주 조금씩의 계량 차이만 있을 뿐이지만 하라는 대로 정확하게 따라 하지 않으니 잘 나올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이 방법으로도 맛난 파운드케이크가 만들어진다면 공식화하여 그때그때 대입해서 좀 더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반죽을 만들기 전에 먼저 아이싱을 위한 소스로 휘핑크림을 데워서 얼그레이 찻잎을 넣고 30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반죽에 들어갔다. 과정은 레시피 영상 동일하게 말랑해진 버터를 핸드믹서로 푼 뒤 설탕과 소금을 여러 차례 나눠서 넣고, 계란을 푼 것도 조금씩 넣어서 휘핑을 했다. 이때 계란의 온도가 낮으면 버터와 분리현상이 일어나는데 실온에다가 오래 나뒀음에도 부엌이 추워서인지 우려하던 분리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래도 가루류를 넣으면 반죽이 대부분 살아나기 때문에 (여기서도 분리되면 답 없음) 빨리 가루류를 체 처넣고 섞어 주었다. 이제 미지근한 휘핑크림을 넣고 섞어야 하는데 때마침 아이싱 소스로 우려 놓은 찻잎이 30분이 지나 타이머가 울렸고 빨리 찻잎을 건져내면서 오븐도 예열해주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다음엔 미리 버터를 발라놓은 파운드케이크 틀을 가져와서 반죽을 팬닝을 해주고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게 들어가게 주걱으로 눌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열된 오븐에 반죽을 넣고 170도에서 40분간 구워주면 되는데 이 온도와 시간은 내 오븐에서 파운드케이크가 가장 맛있게 구워지는 조건이라서 기억해두고 있다가 매번 동일하게 굽고 있다. (오븐과 꽤나 많이 친해졌다.) 반죽은 열을 받으면서 가운데가 점점 솟아올라서 거의 낮은 화산처럼 볼록하게 튀어 올라서 가운데가 갈라졌다. 가운데가 갈라진 것은 정말 잘 구워졌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높이가 꽤나 높은 걸로 봐서 반죽의 양이 많은 것 같은 게 확실했다.
40분이 금세 지나고 식욕을 자극하는 빵 냄새를 폴폴 풍기는 파운드케이크를 꺼내 일단 틀 안에서 10분간 식혀준 다음 식힘망 위로 올려주고 아래에는 평평한 접시 하나를 깔았다. 그리고 얼그레이를 우려 놓은 생크림을 가져와서 슈가 파우더를 섞은 다음 파운드케이크 위로 주르르륵 떨어뜨리면 아이싱이 파운드케이크를 감싸면서 흘러내려서 아주 예쁘게 뒤덮었다. (색이 너무 예쁘다.) 여기에 허브도 올리면 딱이련만! 책상 서랍에 잠들어 있는 11월에 산 허브 타임 씨앗을 다시 심어볼까 하고 고민이 되었다. 예쁜 베이지색을 띤 아이싱이 굳고 나서 빵칼로 썰어주는데 얼그레이 찻잎이 콕콕콕 박힌 속이 드러났다. 윗부분이 살짝 얼룩덜룩한 게 반죽이 많아진 만큼 굽는 시간을 5분 정도 더 늘려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제 드디어 시식시간! 원래 파운드케이크는 하루 지나서 먹어야 더 맛나다고는 하는데 후기는 적어야 하니 접시에 파운드케이크를 담아서 방으로 가져왔다. 아이싱이 있는 부분부터 포크로 한 조각 떼어내서 먹는데 아이싱이 굉장히 부드러우면서 달달했다. 그리곤 입안에 얼그레이 향이 퍼지는데 내일이면 향이 더 진해질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나도 내일 아침은 얼그레이 파운드케이크와 커피로 시작할 것 같다. 그리고 검증도 마쳤으니(웃음) 앞으로 파운드케이크는 오늘 공식화 한 방법으로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베이킹이 점점 더 쉬워지고 재밌어지는 것 같다.
색이 너무 예쁜 얼그레이 파운드 케이크! 허브를 올리면 더욱 예쁘겠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