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만들어?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가족들이 오동통해지고 있는 건 기분 탓일까?
분명 코로나 시국 탓도 있겠지만 유독 배와 엉덩이에 살이 찌고 있는 것 같은 게 나의 베이킹 탓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웃음) 앞치마를 입고 작업대에 재료들을 꺼내 재료들을 계량하고 있으면 가족들은 내게 와서 묻는다. "오늘 또 만들어?"순간 '또'라는 단어에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곧바로 힘들지 않냐며 다정한 걱정을 건네는 바람에 삐죽 나오려던 입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빵사가 10회 남은 지금 나는 무리를 하고 있기는 하다. 손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부모님께서는 매일매일 베이킹을 하고 있는 나를 보시면서 이게 그렇게 재밌냐며 의아해하시는데 그 앞에서 차마 100일 동안 홈베이킹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현재까지는 언니만 알고 있는데 왠지 부모님께는 알려드리기가 쑥스럽다. 베이킹이 너무나도 재밌다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재밌는 건 사실이니까)
어제 만든 얼그레이 파운드케이크는 두 조각만이 브레드 박스에 남아있었다. 아침으로 먹을 수 있고 사과가 들어간 베이킹이 있을까 검색을 해 보았다. 굳이 사과인 건 얼마 전에 선물로 아주 맛있는 사과 한 박스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원랜 애플파이를 만들고 싶었는데 강력분과 중력분 모두 떨어진 상황이라 다른 걸 찾아보기로 했다. (애플파이는 중력분으로 만든다.) 박력분은 엄마께서 무려 4kg짜리를 사다 주셨기 때문에 당분간 걱정 없이 만들 수 있다. 애플 파운드케이크가 무난하긴 한데 새로운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캐러멜 사과 파운드케이크'를 발견했다. 실상 애플 파운드와 거의 똑같긴 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과조림을 캐러멜 소스에 섞어 만들고, 반죽에 섞던 사과 조림을 머핀 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파운드케이크 반죽을 넣고 구워서 뒤집어주면 된다. 그냥 틀만 달리 한 애플 파운드케이크라 고나할까. (하하)
계란 두 개와 버터를 미리 꺼내놓고 주말에 새로 산 책을 보다 보니 벌써 3시가 되었다. 오늘은 그냥 쉴까 생각하다가도 이미 실온에 꺼내놓은 버터가 말랑말랑해졌기 때문에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먼저 캐러멜 사과조림을 만들어야 하는데 레시피 상에서는 사과 1개를 넣는데 사과 조림은 많이 있을수록 맛있어서 2개를 썰어 넣었다. 설탕에 물을 넣고 캐러멜 라이징 한 다음 사과를 넣고 졸이면 되는데 레시피에서는 없지만 사과 양이 많아졌으니 추가적으로 꿀을 조금 넣어주었다. 사과 두 개의 수분은 생각보다 많아서 졸이는데 시간이 걸려 그 사이 버터를 풀기로 했다. 그 사이 사과 조림이 거의 완성되어서 반죽을 멈추고 수분이 날아간 사과조림을 그릇에다가 옮겨주었다. 그리고 반죽을 계속 만들었는데 설탕과 계란물을 차례대로 넣고 휘핑하고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 계피가루(이 레시피는 독특하게 반죽에다가 계피가루를 넣었다.), 우유를 넣어 섞는 기본 파운드케이크 과정과 동일하게 진행이 되었다. 레시피에서는 설탕 양을 20g 정도 줄였는데 나는 1:1:1 기본 원칙을 따라서 다른 재료와 동일한 양으로 넣어주었다.
오븐을 켜서 예열을 하고 지난번 사두고 한번 쓰고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벌어지지 않는 (그러나 벌어지는) 1회용 머핀 컵'을 오븐 팬 위에 8개를 꺼냈다. 사과조림을 바닥에 깔고 위에 반죽을 올린 뒤 깔끔하게 표면을 정리해주었다. 기본 파운드케이크 틀에 넣으면 40분을 굽는데 머핀 틀에 넣은 것은 그보다 짧게 20분을 굽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해진 사과의 달콤한 향이 오븐 밖까지 솔솔 피어오르는 듯했다. 사과가 들어간 베이킹은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킁킁대곤 한다. 오븐에서 꺼낸 케이크를 볼록 튀어 올라온 윗면이 아래로 가도록 뒤집어서 식힘망 위에 올려주었다. 오늘 하루 종일 아주 작은 컵라면 하나밖에 먹지 않아서 식힌 지 10분밖에 안 지났는데 꼬르륵하는 소리가 나서 바로 부엌으로 가서 먹어보기로 했다. 접시에 뒤집힌 케이크를 올리고 종이 머핀 틀을 양옆으로 벌려서 케이크를 틀에서 빼냈다.
음...? 옆에 주름이 져있는 머핀 틀인 걸 감안해도 확실히 영상에서 보는 비주얼과는 느낌이 달랐다. 이상한 건 아닌데 어딘가 어색한 그 느낌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를 잘 모르겠다. 영상에서는 마지 푸딩처럼 모양이 딱 잡혀서 어딘가 단단해 보였는데 내 건 포슬포슬한 카스테라 위에 사과조림을 흘리듯이 올려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쇠로 된 단단한 틀이 모양을 잡아주는 거였었나 그냥 쇠로 된 머핀 틀 살걸 아직도 후회가 되었다. 벗겨놓은 머핀 틀 바닥에 붙은 사과조림을 떼어서 먹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달았다. 사과에서도 단 맛이 나는 걸 생각 못하고 마지막에 꿀까지 추가했으니 단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만들 때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아... 또 뇌피셜로 인한 실패인가 싶어서 다운된 기분으로 사과 조림과 함께 케이크 부분까지 먹었는데 폭신폭신한 파운드케이크로 사과 조림의 단 맛이 많이 중화가 되었다. 레시피대로 반죽에서 설탕을 20g 정도 줄였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튜버분들도 다 해보고 가장 맛난 레시피를 올리는 걸 텐데 어제 얼그레이 파운드케이크의 성공 탓에 들뜬 마음이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달달한 것이 아주 맛있다며 매우 좋아하셔서 뿌듯했다. 이렇게 맛있게 드셔주시니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새삼스레 되뇌어보았다.
모양은 어째 원하는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맛은 있었답니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