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콘에 대한 생각의 변화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나는 스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스콘 특유의 목이 꽉 막힌 느낌과 퍽퍽한 식감은 커피와 함께 먹으면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먹고 나면 어딘가 헛헛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기프티콘으로 들어올 때만 먹어보았지 내 돈 주고 스콘을 사 먹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글로 적지는 않았지만 베이킹 초반에 초코칩 스콘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잘못 만드는 바람에 스콘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그 후로도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오늘 베이킹을 뭐할까 고민을 하다가 벌써 오후 2시가 되었다. 간단한 게 하고 싶은데 마들렌, 파운드케이크는 종류별로 할 만큼 만들었고 당근케이크를 할까 했으나 크림치즈를 사 와야 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아침에 택배를 보낼 겸 편의점에 들렀다가 중력분과 우유를 사 온 게 있어서 베이킹을 할 수 있는 범위는 좀 더 늘어났다. 아침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뭐할까 중얼거리는데 언니가 크로와상! 맘모스 빵! 스모어 쿠키! 등을 외치다가 마지막으로 "스콘!"이라고 외쳤다. "아... 그건 좀 별론데?"라고 했더니 아빠께서는 지난번 만든 스콘을 맛있게 드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긴 초코칩 스콘을 버리지는 않았으니 누군가는 먹었을 텐데 진짜로 다들 맛있게 드셨는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영 구미가 당기지는 않지만 스콘 레시피를 찾아보다가 정말 먹음직스럽게 생긴 '솔티 캐러멜 스콘'을 발견했다.
아... 솔티 캐러멜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 그 마법의 소스와 함께라면 스콘도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솔티 캐러멜 소스부터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재료를 보니 설탕과 함께 물엿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지난번 롤케이크의 글라사주를 위해 만들었던 캐러멜 소스에도 물엿이 들어갔었는데 만들다가 실패해서 설탕만으로 다시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엿을 빼, 말아? 고민하던 찰나 지난번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물엿을 넣는 방법을 따라 하기로 했다. 지난번엔 물엿과 설탕을 한꺼번에 넣고 녹이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물엿을 먼저 끓인 다음에 설탕을 조금씩 넣으면서 손 거품기로 섞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저어주니까 가장자리만 타는 것도 방지가 되고 캐러멜 라이징이 예쁘게 되는 것 같았다. 생크림에 소금을 넣어주고 따뜻하게 데운 다음 넣어주니까 수증기가 엄청나게 나면서 완벽한 캐러멜 소스가 완성이 되었다. (수증기가 날 때 조금 멋있는 것 같다.) 여기서 일부분은 반죽에다 넣기 위해 냉장고에다가 식혀놓고, 나머지는 글라사주를 위해 버터와 슈가파우더를 넣고 섞은 다음 짤주머니에 넣고 입구를 집게로 막은 뒤에 식탁 위에서 식혀주었다.
이제 스콘 반죽을 만들시간이 왔다. 냉장고에 두었던 캐러멜 소스를 가져와 계란 1개와 바닐라 익스트랙, 그리고 생크림을 넣어 섞어놓는데 이렇게 만드는 방식은 또 처음이라서 어떤 맛이 될지 기대가 되었다. 이제 중력분과 베이킹파우더, 계피 가루에 버터를 넣어 스크래퍼로 다지듯이 섞고 만들어 놓았던 캐러멜 소스를 넣은 후 주걱으로 자르듯이 섞어서 어느 정도 뭉쳐지면 손으로 열심히 주물러서 하나의 반죽으로 뭉쳤다. 이제 두근거리는 팬닝 시간인가 하고 아이패드로 팬닝 양을 확인하려던 찰나 아이패드 옆에 있는 하얀색 가루가 담긴 그릇에 눈길이 갔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그것은 설탕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있고 난 후 내가 실수로 두 번 계량했길 바라면서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중력분과 베이킹파우더 그리고 '설탕'이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간의 베이킹은 계란 혹은 버터에 설탕을 먼저 넣고 가루류를 체 쳐서 넣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던 바람에 가루류에 설탕을 먼저 섞어 넣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베이킹 재료의 기본 중의 기본인 설탕을 빼먹다니! 얼마 전 읽었던 베이킹 관련 책에서는 설탕은 단맛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의 작용을 돕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리 찾아봐도 베이킹에 설탕을 빼먹었다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반죽을 다시 만들자니 캐러멜 소스부터 다른 재료들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마침내 '녹여서 섞어볼까...?' (*주의: 따라 하지 마시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실행으로 옮겼다. 설탕에 물을 조금 넣어서 녹인 후 반죽에다 조금씩 넣으면서 치대기 시작했다. 역시나 반죽에 설탕이 겉도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너무 질어져서 중력분을 약간 넣어서 다시 치댔더니 어느 정도 모양이 나오긴 했다. 넣어야 하는 설탕 양의 반밖에 넣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더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아서 그냥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건넌 걸 지도)
반죽을 7등분 한 후 동그랗게 만들고 오븐 팬 위에는 최대 6개만 들어가서 6개를 올려준 후 손으로 푹푹 찔러서 바위 같은 모양을 만들어 주었다. 레시피에서 반죽이 녹은 것 같다면 냉장고에서 차갑게 보관한 후 구우라고 해서 열심히 치댄 탓에 (설탕물도 넣고) 당연히 녹아버린 나의 반죽을 팬닝 한 채로 랩을 씌워서 냉장고에서 10분 동안 굳혀주었다. 무사히 오븐에 넣고 구워지는 걸 엄마 미소로 보고 있다가 구움색을 위해 위쪽에 우유를 바르는 걸 깜박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 권장시간 15분을 굽고 꼬치를 푹 찔러서 테스트를 해보니 입구 쪽에 있는 것이 덜 구워진 것 같아서 팬을 거꾸로 돌려 자리를 바꿔준 뒤 5분 정도 더 구워주었다. 바로 식힘망 위로 옮긴 후 나머지 1개도 정가운데에 놓고 또 한 번 구워주었다. 투박하게 부푼 모양은 그럴싸한 7개의 스콘을 모두 식힘망 위에 놓고 아래에는 오븐 팬을 깐 뒤 처음에 만들었던 캐러멜 글라사주가 들은 짤주머니를 가져왔다. 입구를 자르고 스콘 위로 동그랗게 올려주는데 어찌나 먹음직스럽고 예쁘게 흘러내리는지 그간 실수했던 게 다 잊힐 만큼 너무 예뻤다.
접시에 캐러멜 스콘을 하나 놓고 레시피 영상처럼 버터를 한 조각 잘라서 올렸더니 마치 카페에서 파는 듯한 비주얼이 되었다. 가족들도 스콘을 보더니 파는 것 같다며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다. 캐러멜 소스는 굳지 않아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잘라먹어야 했다. 캐러멜 소스가 있는 부분을 잘라보는데 쉽게 바스러져서 퍽퍽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의외로 촉촉하고 특히나 계피 가루 냄새가 너무 좋았다. 씁쓸한 캐러멜 소스가 많이 달지도 않아서 더욱 입맛을 당겼다. 다음엔 위에 올린 버터를 조금 잘라서 같이 먹어보았는데 고소한 버터가 캐러멜의 씁쓸함 맛을 잡아주면서 훨씬 더 맛있었다. 이런 부드러운 스콘이라면 자주 만들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스콘에 대한 생각을 싹 바꿔놓았던 베이킹이었다. 다음엔 꼭 설탕 넣어서 해야지...!
버터를 올리니더욱 예뻐졌어요.
솔티 캐러멜 스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