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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Feb 12. 2021

[그빵사]100. 벚꽃 마카롱 (2) - 마지막화

벚꽃 엔딩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내가 만들 벚꽃 마카롱 필링에는 두 가지가 들어간다.


연유 버터크림과 함께 우유와 생크림 등을 넣고 끓여서 찐득하게 만든 우유 크림을 넣을 예정이다. 꼬끄 반죽을 말리는 사이 우유 크림을 만들어서 식힌 후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보관했다. 점심도 먹고 쉬면서 티비도 보고 후 꼬끄 겉면을 만져 보니 손에 묻어나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오븐에 넣을 시간이 된 것이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레시피 영상에서 나온 대로 140도에서 15분을 굽기로 했다. 오븐 팬을 넣고 지켜보는데 반죽이 부풀어 오르면서 반죽 밑에 '마카롱의 발'이라고 부르는 삐에가 생겨났다. 반죽을 잘못하면 삐에가 생겨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삐에가 생겨난 것만으로도 꽤나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15분이 지나고 난 뒤 오븐 팬을 꺼냈더니 아니 이게 무슨 일인지 딸기 우유색이었던 꼬끄는 얼룩덜룩 구움색이 나서 황토빛으로 변했다. 마치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 같았다. (눈물) 다른 사람들처럼 반으로 쪼개 속이 꽉 찼는지 아닌지 확인해보려고 했으나 너무 단단해서 반으로 쪼개자마자 바스러졌다. 먹어보니 아주 단단한 과자 같았다. 바스러진 과자를 먹어보았는데 아몬드 향이 고소하게 나는 게 억울하게도 맛은 있었다. (웃음)

구움색이 많이 난 첫 번째 꼬끄ㅠ

일단 오븐을 끄고 두 번째 오븐 팬을 넣기 전에 홈 베이킹 카페에서 마카롱 구움색에 관하여 찾아보았더니 오븐 온도가 높으면 그러할 수 있다고 했다. 140도에서 130도로 오븐 온도를 낮추고 두 번째 팬을 넣어주었다. 15분이 지나서 나온 꼬끄는 넣기 전 예뻤던 딸기 우유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삐에도 올라와서 성공했구나 싶었는데 식히고 난 후 팬에서 떼어내는데 몇 개는 바닥에 달라붙는 걸 보니 덜 익은 것 같았다. (아이고) 이래서 마카롱이 쉬운 게 아닌 거구나! 44개의 꼬끄 중 14개만 살아남았다.

색’만’ 살아남은 두 번째 꼬끄

이제 꼬끄도 완성이 되었으니 필링으로 사용할 연유 버터크림을 만들었다. 버터를 핸드믹서로 풀고, 설탕, 생크림, 연유, 바닐라 익스트랙을 넣고 휘핑을 해서 만드는데 그야말로 재료 중에서 '달다' 생각되는 모든 게 들어가는 듯했다. 냉장고에서 차갑게 만든 우유 크림도 가져와서 짤주머니 두 개에 우유 크림과 연유 버터크림을 따로 넣어주었다. 꼬끄 중에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것들끼리 짝을 지어 놓고 하나를 뒤집어서 바닥에 연유 버터크림을 꽃잎을 따라 동그랗게 짜주고 가운데 빈 공간에는 우유 크림을 채운 뒤 다른 꼬끄로 덮어 주었다. 처음에는 얇게 들어갔던 필링이 점점 두꺼워지는 것을 보니 '뚱카롱'이 유행인 한국인 유전자를 속일 순 없는 것 같았다. (웃음)

필링도 꽃 같았어요 :-)

너무 심하게 덜 구워지고 몇 개 먹은 꼬끄를 제외하고 나니 총 17개의 완전한 벚꽃 마카롱이 완성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10개는 구움색이 났지만)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 꽃무늬 접시에 가장 모양이 예쁜 다섯 개를 담아보는데 감동이 몰려왔다. 내가 마카롱을 만들었다니! 물론 파는 것만큼 완벽하게 만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는 마카롱을 만들었다는 것에 굉장히 감격스러웠다. 만드는 내내 실패하면 어쩌나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겠지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벚꽃 마카롱

마카롱은 12시간이 지나고 나서 먹어야 더 맛있다고 했지만 맛이 궁금하여 만들자마자 먹어보았더니 생각보다 너무 달고 꼬끄는 사 먹었던 것처럼 쫀득하지도 않고 바삭바삭한 느낌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마카롱을 밀폐용기에 담아서 냉장고에 두었다. 다음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은 설날이었던 아침에 가족들과 함께 떡 만둣국을 먹으면서 2021년의 복을 빌었다. 설거지를 끝낸 후 커피 타임에 냉장고에 숙성된 마카롱을 꺼내서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마카롱 맛이 달라졌다. 어제보다 꼬끄가 훨씬 쫀득해져서 언니가 한 입 먹자마자 “이거 진짜 파는 것 같아!”라며 놀라워했다. 또한 너무 달아서 걱정이던 것이 오늘은 그 단맛이 살짝 줄어서 적당하게 달콤했다. 베이킹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실로 대단했다.

오늘 먹은 쪼온득한 마카롱

그빵사를 연재하는 100일의 시간은 나에겐 마카롱이 숙성되듯, 빵이 발효하는 듯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12월에서 올해 2월로 미뤄지면서 3개월의 시간이 붕 떠버려서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우연히 컨셉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발견하게 되었고 물 흐르듯이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00일 동안 거의 매일 빵을 구우며 글을 썼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도 있지만 다른 이들은 만나지 않고 오직 나에게 집중하면서 빵을 구웠던 시간은, 아니 빵만 구워도 괜찮았던 이 시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성실보다는 잔머리가 더 잘 굴러가던 내가 고집스러울 만큼 정확한 시간과 계량을 맞추고, 오븐 문을 열었다 닫았다 조바심 내기 급급했었는데 이젠 타이머를 맞춰놓고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오직 나의 즐거움에만 초점 되어있던 취미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고 새로운 일만 벌여놓고 무엇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했던 내가 일을 매듭지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홈베이킹 실력도 많이 늘었다. 마들렌을 만드는 것도 힘들었었는데 이제는 베이글을 만들어서 크림치즈를 발라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간 원데이 클래스로 다양한 취미들을 경험하면서 '지속 가능한 취미'를 원했었는데 애써 찾으려 할 때는 보이지 않더니 정말 자연스럽게 홈베이킹이 그러한 취미가 되었다. 그빵사는 여기서 끝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빵을 구울 것이다. 우울한 기분을 말릴 때도, 함께 하는 즐거움을 배로 할 때도, 혼자 있는 고립의 시간에도 반죽을 만들고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미소 있는 내가 상상이 된다.


2020.11.01 ~ 2021.02.12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100화 종료.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주에 에필로그로 찾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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