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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Nov 13. 2020

[그빵사]12. 사거리 베이킹 용품 가게

맹모삼천지교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홈베이킹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게 생각보다 주변에는 베이킹 용품을 파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쯤엔 어딜 가나 베이킹 용품 코너가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지금 사려고 보면 마트에는 박력분, 코코아 가루 등의 기본적인 재료만 팔 뿐 빵틀이나 식힘망 등 베이킹에 특화된 재료들을 파는 오프라인 가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는데 한 번에 사자니 부담스럽고, 나눠서 사자니 번거롭고 하니 점점 새로운 빵을 만들기 주저하게 되었다. 바로 전날 다음날 뭘 만들기 결정하곤 하는데 '아! 이거 만들어먹고 싶어!' 하고 떠올랐을 때 후다다닥 나가서 사 올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아쉬웠다.


이런 얘기를 엄마와 하는 도중에 엄마께서 "집 근처 사거리에 거기 빵 재료 팔지 않니?"라고 하셨다. 내가 기억하기론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그 가게는 커피숍이었다. 엄마께선 "그런가? 없어졌나 보네"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셨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던 언니가 "아냐, 거기 아직도 있어. 내가 버스 타고 갈 때 봤어."라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커피숍 바로 옆에 있는 가게를 지나가면서 '여긴 제빵 학원인가?'하고 궁금했던 게 퍼뜩 떠올랐다. 다음날 한 번 들려보기로 했다.


구경도 할 겸 이번엔 생크림이 가득 들어간 도지마롤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긴 사각형의 틀을 사러 갔다. 진짜 여기가 맞나? 반신반의하며 '홈베이킹'이라 적혀있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베이킹 재료 가게가 맞았으며, 생각보다 내부가 엄청 넓었다.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텐트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용품이 너무 많아서 베이킹 초보인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도 몰랐다. 일단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고 빵 틀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여러 크기의 직사각형 틀이 있는 걸 보면서 당황했다. '뭘 사야 하지?' 그저 유튜브 레시피 영상을 보고 왔을 뿐 생각해보니 크기와 모양은 어느 정도의 틀을 사야 하는 지 조사를 안 해보고 온 것이었다. 그저 빨리 이 가게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자격증 시험 볼 때 쓰는 롤케이크용 기본 틀을 알려주셔서 그걸 골랐다. 온 김에 살까 말까 고민했던 식용 색소라던가, 집에 있지만 베이킹용으로 따로 쓸 실리콘 주걱, 체 등을 고르고 나니 35,000원이란 가격이 나왔다. (헉! 분명 롤케이크 틀은 7,500원이었는데!)


두 손은 무겁게, 지갑은 가볍게, 마음은 뿌듯하게 집에 돌아와 틀을 한번 오븐에 넣어보았는데 너무 커서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오븐에 틀이 들어가지 않을 거란 생각조차 못했다. 심지어 영수증도 괜찮다며 받지 않아 교환이 안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결제한 내역이라도 보여드려야 하나 싶어서 살피고 있는데 '00 홈베이킹 : 3,500원'이 찍혀있었다. 0을 한 개 잘못 봤나 다시 봤지만 3,500원. 두 번 결제한 건가 싶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뭐가 어쨌든 간에 가긴 가야 하는구나 하면서 문이 닫기 전에 헐레벌떡 가게로 향했다.


사장님께서는 다시 와줘서 고맙다며 새로 결제를 하면서 10% 할인을 해주셨고(꺄!), 빵틀도 흔쾌히 바꿔주셨다. (아마 그냥 갔어도 바꿔주셨을 거다.) 우리집 오븐에 쏙 들어가는 조금 더 작은 직사각형 틀을 기분 좋게 품에 안고 왔다.


그 뒤로도 필요할 때마다 종종 들려서 재료를 사 오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과연 이 베이킹 재료 가게가 근처에 없었다면 홈베이킹을 계속하려고 했을까? 물론 인터넷의 발달로 하고자 한다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긴 했지만, 나는 쉽게 자주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내 기억 속에 베이킹 코너가 남아있는 것도 집에서 베이킹을 했던 엄마의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한번 인식을 하면 계속 눈에 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직접 베이킹을 하진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와 결국 이렇게 홈베이킹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불현듯 베이킹이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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