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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Nov 20. 2020

[그빵사]19. 티라미수

기다림의 미학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새로운 레시피로 베이킹을 하다 보면 '이게 된다고?'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초콜릿 쿠키를 만들 때 버터와 설탕에 박력분&코코아 가루를 섞어야하는데 주걱으로 몇 번 뒤적거린 후에도 가루가 그대로여서 '이거 되긴 되는 거야? 내가 뭘 잘못 넣었나?' 하면서 걱정이 된다. 그래도 유튜브 선생님께서 잘 섞어주면 된다고 하니까 선생님을 믿어보면서 섞일 때까지 손을 움직이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새 완전히 섞여서 꾸덕한 코코아 반죽이 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던 것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심은 많아서 언제나 '과연...'이라는 생각을 갖고 베이킹을 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도전할 베이킹으로는 '티라미수'를 골랐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우연히 작은 컵으로 된 티라미수를 한번 사 먹어본 적이 있는데 다음날 또 가서 사 먹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또한 엄마께서도 디저트류 중에선 티라미수를 제일 좋아하셔서 이번 기회에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레시피 영상은 예전부터 찾아본 영상이 하나 있었다. 단 4가지 재료로 만드는 초간단 티라미수!

만드는 방법도, 재료도 너무 간단하지만 놀랍게도 4가지 중 3가지 재료가 없었다. 오직 커피가루밖에 없어서 나머지 마스카포네 크림치즈, 연유, 그리고 빵의 역할을 할 쿠키까지 구매를 하고 이제 드디어 티라미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각형 모양의 통 안에 바닥에 쿠키를 깔고 커피 캡슐로 에스프레소를 뽑아서 적셔준 뒤, 마스카포네 크림치즈와 연유를 섞은 것을 위에 얹기만 하면 끝! 오븐도 쓰지 않는 초 간단 레시피이다. 냉장고에서 6시간 이상 숙성해서 먹기 전에 코코아 가루를 뿌려주면 된다고 한다. 완성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기 전에 맛이나 볼까 하고 보울에 남아있던 크림을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서 먹어 보았는데... 이게 웬걸? 너무너무... 맛이 없었다. 맹맹하고 느끼한 게 딱히 달달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아 망했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날 온 가족이 아침을 먹고 난 뒤 간식으로 티라미수를 먹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내 코코아 가루를 뿌린 후에 거실 테이블로 가져왔다. 어젯밤 일로 맛은 왠지 자신이 없어서 가족들이 먹기 전에 주저리주저리 변명이 많아졌다. "이게 말이지... 영상에선 A쿠키를 쓰라고 했는데 못 찾아서 B쿠키를 썼기도 했고... 크림도... 아무튼 막 그렇게 맛이 있지는 않을 수도 있어... 중얼중얼.." 가족들은 신경도 안 쓰는 듯 뭘 그러냐며 괜찮다고 크게 한 입을 떠서 먹었다.


"맛있는데?"


놀란 마음으로 나도 한 번 먹어보니 티라미수는 예상과는 다르게 정말 맛있었다. 씁쓸한 커피에 촉촉하게 젖은 쿠키와 묵직한 크림을 함께 먹으니 세 가지 재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풍미가 가득했다. 코코아 가루는 너무 많이 뿌렸는지 하도 앞니에 달라붙어서 영 먹는 모양새는 볼품없어졌지만... 티라미수는 진득한 맛이 완전 매력 있었다. 6시간 동안 숙성의 마법인가? 싶을 정도로 어젯밤 먹어 보았던 맛과는 느낌이 달랐다.


베이킹은 언제나 숙성과 식힘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레시피도 종종 있긴 하다.) 그냥 먹어도 맛있을 수는 있지만 잠시 가만히 내버려 두는 시간 동안 놀랍도록 맛과 식감이 변한다. 마들렌과 레몬 케이크도 하루 지나서 먹으면 더 촉촉하고 향이 가득해지고, 갓 나온 쿠키는 물렁물렁하지만 꺼내서 식힌 후에는 바삭바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성격도 급하고 충동적인 면이 없지 않은 나에게 베이킹은 기다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좋은 취미가 된 것 같다. 기다리면 복이 오나니! (하지만 빨리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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