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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Nov 19. 2020

[그빵사]18. 갓 구운 빵 냄새

비오는 날의 마들렌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마들렌을 굽는 것은 숨길 수 있을까? 어느새 마들렌 굽는 냄새는 현관에서 가족들이 어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지하철역에서 파는 델리만쥬처럼 사람을 부른다.


냄새에도 온도가 있는 건지 빵 굽는 냄새는 따뜻함도 느껴진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부엌에 퍼져서 다 굽고 난 뒤에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방 안에 있다가 물 마시러 잠시 부엌에 가면 빵이 나를 반기고 있는 기분도 든다. 엄마께서는 집에서 음식 냄새가 나면 사람 사는 집 같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뭔지 빵을 굽고 나서는 알 것 같았다.


오늘 하루 비가 하루 종일 와서 그런지 아니면 작업이 잘 안돼서 그런지 울적한 기분이 오전 내내 지속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마들렌을 구워보기로 했는데 매번 플레인이나 레몬 마들렌만 만들다가 이번엔 색다롭게 얼그레이와 코코넛 마들렌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레시피를 찾아보는데 플레인 마들렌과는 다르게 들어가는 것도 많고 과정도 어려웠다. 플레인 마들렌은 계란 무게와 동일한 박력분, 버터, 설탕과 베이킹파우더만 넣고 섞어서 만들면 끝인데 어째 생크림, 럼주 등 못 보던 재료들이 등장했다.


안 그래도 축축 처지는데 번거롭기까지 하니 왠지 할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 말까? 해볼까? 고민한 끝에 기본을 응용해 나만의 간단 레시피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뭐, 파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끼리 먹는 건데 어때!' 기본 재료와 과정은 일반 마들렌과 동일하게 가는데 얼그레이 마들렌은 박력분에 얼그레이 찻잎을 갈아서 섞었고 마지막에 꿀을 조금  추가해주었다. 코코넛 마들렌은 기본 반죽에 마지막으로 코코넛 분말만 섞어주는 것으로 레시피를 바꿨다.


오븐이 작아 마들렌 틀 6구와 조가비 틀 9 구로 나눠서 굽기 시작했는데, 맨 처음 넣은 6구 얼그레이 마들렌은 온도가 높았는지 미세하게 탄 내가 나기 시작해 바로 오븐을 끄고 틀에서 꺼내 식힘망 위에 올려주었다. 색이 살짝 진해졌지만 다행히도 타진 않았다. 그다음엔 온도를 살짝 낮춰서 9구 코코넛 마들렌을 구웠더니 이번엔 또 안 익어서 온도를 원래대로 높이고 2분가량 더 구워주었더니 노릇노릇하게 색이 예쁜 마들렌이 나왔다.

갓 나온 얼그레이 마들렌 하나를 집어 들고 마들렌을 굽기 시작할 때 외출해서 돌아오신 엄마와 사이좋게 맛을 보았다. "얼그레이 향이 정말 좋은데!" 레시피를 간단하게 바꿔서 맛나게 나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우리 가족들 입맛에는 잘 맞았다. 코코넛 마들렌도 먹어보니 플레인 마들렌과 비슷했지만 좀 더 고소한 풍미가 느껴졌다.


마들렌을 굽고 나니 울적했던 기분이 오븐에 말린 듯이 바싹 말라 뽀송해진 것 같았다.

오늘 빵 굽길 잘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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