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너란 녀석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취미 부자인 내가 언제나 갈망하던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속 가능한 취미'였다. 취미로 했던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는 이제 일이 되어버려서 취미라 부를 수 없게 되었고, 프랑스 자수나 라탄 공예, 재봉 등은 할 땐 재미있으나 하고 나면 딱히 쓸모는 없어서 몇 번 하다가 재료만 쌓아둔 채 하지 않았다.
올 초엔 지속 가능한 취미로 20대 초반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선물포장공예를 자격증도 따면서 시작하려 했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일단 원데이 클래스로 한번 들어보았는데 놀랍게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래서 일단 하고 봐야...) 다른 취미들도 원데이 클래스로 들어보고 나서는 그냥 다양한 종류를 체험하는 것이 나의 '취미'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이제 베이킹이 내 인생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하고 있는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용! 베이킹은 초기 시작 비용도 많이 들지만 그 이후로도 꾸준하게 많은 지출이 나간다. 수공예 같은 경우는 기본 도구만 있으면 재료만 구매해서 직접 만들면 시중 판매가보다 싼 비용으로 만들 수 있고 재료를 한 번 사두면 응용해서 여러 개의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베이킹은 기본 도구 외에도 빵 종류마다 다른 종류의 도구들이 필요한 데다가 재료들도 천차만별이고 2~3번 베이킹을 하고 나면 기본 재료를 다시 구매해야 했다. 특히나 복병이었던 것은 바로 '버터'. 생각했던 것보다 버터 가격이 비싸고 많이 필요했다. 베이킹에 쓰는 버터는 무염버터로 마트에서 사면 대략 450g에 평균 10,000원의 가격이다. 한번 베이킹을 할 때마다 대략 100g 정도 쓰니 4번 정도 하고 나면 새 버터를 구매해야 했다. 우유, 계란은 부모님이 사주시기 때문에 포함은 안 했지만 이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초반에는 재료를 사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서 어떤 빵을 만들지, 무슨 재료를 사야 할지 기대가 되었는데 이제는 줄어드는 버터를 보면서 '아... 또 사야 하네'하면서 부담감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홈베이킹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까? 언니랑 나랑 우스갯소리로 베이킹은 부잣집 백수가 해야 하는 취미라고 말한다.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
하지만 돈을 뛰어넘어서 베이킹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들이 정말 맛있게 먹어주기 때문이다. 매일 어떤 빵을 굽는지 기대하고, 오다가다 하나씩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나 뿌듯할 수 없다. 자고 일어나서 텅 빈 그릇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베이킹을 하지 않은 날이면 아빠께서 '딸이 오늘은 빵을 안 구웠나 보네'하면서 아쉬운 얼굴로 방에 들어가시는 걸 보면 내일은 맛난 빵을 많이 구워야지 하면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버터의 가격 때문에 한숨짓는 날도 있지만 내일은 어떤 빵을 만들까 기대되는 날이 더 많다.
베이킹은 지속 가능한 취미가 될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