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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Nov 24. 2020

[그빵사]23. 크로와상을 만들어보려다가

여행의 기억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해외여행을 갔을 때 숙소 조식으로 제일 많이 먹었던 건 크로와상 + 버터 + 커피의 조합이었다.


어느 나라 숙소이건 간에 식빵과 크로와상은 꼭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흔히 먹는 식빵보다는 왠지 크로와상이 좀 더 좋아 보여서 둘 중에서는 꼭 크로와상을 먹었다. 낯선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약간 출출해질 때도 카페에서 종종 커피랑 크로와상을 시켜 먹기도 해서 해외여행을 떠올리면 온갖 화려한 음식보다도 버터 냄새가 나는 소소한 크로와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여행을 갈 수 없는 나날에도 여행기분을 내고 싶으면 그저 낯선 동네에 가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크로와상을 주문해서 창밖을 보면서 먹으면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런 의미에서 크로와상은 내게 설렘을 주는 빵이었기에 한번 만들어볼까 하고 레시피 영상을 찾아보았다.


[정말 쉬운 크로와상 만들기]라는 검색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영상을 눌러서 먼저 설명란에 재료가 어떤 게 필요하나 보았더니 강력분, 버터, 물, 계란, 설탕, 소금, 이스트로 기본 재료뿐이었다. 일단 재료들은 모두 있으니 만들 수 있겠구나! 하고 기쁜 마음으로 과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반죽을 만들어서 30분 숙성 후 살짝 치댄 후 30분 숙성. 여기까지는 거의 제빵 기본 수준이었다. 이제 이 반죽을 네모 모양으로 얇게 핀 뒤 버터를 바르고 양옆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은 후 20분 숙성한 뒤, 또 밀어서 네모로 만들고 버터를 바르고... 이걸 2번 더 한다고?


총 3회 반복한 반죽을 꺼내서 직사각형으로 밀어 얇게 핀 뒤 삼각형 모양으로 자르고 돌돌돌 말면 일반적으로 알던 생지의 모습이 되었다. '아, 쉬운 게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여기까지는 그~~래도 해볼 만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영상에서 돌돌돌 소라 모양으로 감은 반죽을 또다시 4~5시간 발효를 해야 한다고 했다.


4~5시간?????!!! 중지!! 베이킹을 중지한다!!

이건 내가 시도조차 하지 못할, 아니 시도하지 않을 레시피라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아쉽지만 크로와상은 포기하기로 했다. 어느 날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가 크로와상의 어마 무시한 레시피를 보고 못 만들었다는 일화를 들려드렸는데 주말에 코스트코에서 장 보러 가셔서 크로와상이 12개가 들어간 상자를 사 와주셨다. (감동)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크로와상 12개가 들어있다니. 이건 사 먹어야 옳다 옳아.


다음 날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집에서 느지막이 아침식사로(실은 점심에 가까운) 오븐에 크로와상을 넣고 굽는 동안 버터도 조각 내에서 준비를 하고 커피도 뽑았다. 식탁에 앉아서 따끈한 크로와상을 조금 뜯어서 짭조름한 버터를 발라 한 입을 먹고 난 뒤, 씁쓸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커피 한잔을 마셨다.


하, 여기가 파리인가!


여전히 크로와상은 여행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아마도 그때 내가 먹었던 건 역시 냉동 생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래서 그날의 기분이 똑같이 느껴졌나 하면서 껄껄 대고 웃었다. 제대로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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