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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Nov 23. 2020

[그빵사]22. 연유 크림빵 (2)

무(無)의 시간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엄마께서 나가실 시간은 2시, 오븐에서 빵이 나온 시간은 1시 50분이었다. 오븐에서 굽는 20분 동안은 빵에 넣을 연유 크림을 만들었다. 갓 나온 뜨끈뜨끈한 빵은 브라운 색으로 윤기가 좌르르 흐르게 잘 구워졌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엄마의 재촉이 시작되었다.


"빵은 다 됐니?"

"아직인데... 이거 식혔다가 크림을 넣어야 해. 안 그러면 크림 녹을 수도 있는데..."


이제는 준비를 다 하고 아예 부엌까지 와서 내 옆에서 빵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미처 식히지도 못한 뜨끈한 빵을 6갈래로 칼집을 낸 뒤에 빵 속으로 크림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내가 빵을 만드는 건지 공예를 하는 건지... 안 그래도 바쁘게 빵을 만들고 있는데 엄마께서 너무 재촉하시는 바람에 둘 사이에 약간의 토닥거림이 오고 갔다.


"대충 해~! 엄마 이제 나가야 해"

"대충??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힘 빠지게! 그냥 빵 4개밖에 없으니까 우리 가족이서 먹자. 엄마 그냥 가."

"넌 또 말을 뭐 그렇게 하니~! 10분 더 늦게 나가도 되니까 만들어줘~"


엄마가 한 발 물러섬으로써 2563번째 모녀 전쟁 발발이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슈가파우더로 장식까지 마친 연유크림빵 2개는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겨 엄마 손에 들려나갔다. 전투의 시간이 흐르고 조용해진 부엌에서 나머지 2개의 빵에 칼집을 내면서 지난 댓글에 대한 답을 내었다.


"나는 빵집 사장은 힘들 것 같구먼."


마음 한편에 '가족들을 위해 빵을 굽는다.'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나 빵을 구우면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니까 기쁜 얼굴을 보면서 그것이 내가 베이킹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2차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1차적으로는 내가 즐거웠던 것이었다.


연유크림빵을 만들면서 엄마가 친구분들이랑 맛나게 나의 빵을 드시는 장면보다 반죽이 숙성되어 부풀고, 구움색이 나고, 짤주머니를 통해 빵에 크림이 채워지고, 슈가파우더가 빵 위에 눈처럼 사르르 내리는 장면 하나하나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이킹을 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누굴 위한 것도,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닌 그러므로 잘할 필요도 없는 무(無)의 시간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즐겁게 무언가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취미의 역할인 것이지 그것이 꼭 직업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허투루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는 걸까 조급한 마음에서 변명할 말로 '가족들을 위한다'라는 이유를 붙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연유 크림빵을 먹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카톡이 왔다. 친구 분들이랑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다고 사진 한 장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마음이 뿌듯했다. 내가 행복해서 좋았고, 그로 인해 엄마도 행복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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