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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01. 2020

[그빵사]30. 파블로바 (머랭 케이크)

베이킹 슬럼프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홈 베이킹을 처음 시작한 지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세 번 하고 그만 둘 줄 알았던 내가 계속 빵을 구워내고 있으니 가족들이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생각보다 오래 하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데 이제 슬슬 가족들의 기대(?)의 부응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고 싶었던 빵들은 전부 만들어봤고, 새로운 레시피를 도전하자니 다른 재료들이 필요했는데 구매할 생각을 하니 그마저도 번거롭게 느껴졌다. 콕 집어서 만들고 싶은 것도 없고, 반죽이 숙성되는 것마저도 기다리기 귀찮아졌다.


'이제 베이킹이 질린 건가?'


그렇다고 베이킹을 아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 않은 이 모순점이 어디서부터 생긴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두 달 동안 다양한 레시피를 도전했는데 생각해보니 대부분은 도지마롤이나 연유크림빵 같이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겐 난이도가 높은 레시피가 주였던 것 같다. 쉽다고 느꼈던 건 마들렌, 티라미수, 퐁당 오 쇼콜라 단 3가지뿐이었다. 대부분은 휴지 시간도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 정도도 걸렸고 재료들도 굉장히 많은 종류가 필요했다. 두 번째 베이킹이었던 스모어 쿠키는 재료만 13가지를 준비했으니 말이다. 또한 잘 못 나와도 물어볼 곳도 없고, 난이도가 높은 만큼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이었다.


이렇게 나열하고 나니 내가 어떤 점에서 베이킹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보였다.

실력보다 난이도가 높은 레시피를 주로 선택했고, 그 난이도의 기준은 '휴지 시간'과 '재료 개수'로 구분이 되었다. 재료가 많을수록 거치는 공정이 많아지고 휴지 시간이 길수록 베이킹 시간은 늘어나는 데다가 하나의 레시피를 익히기도 전에 계속 새 레시피를 도전했으니 실로 지칠 만도 했다.


어떻게 하면 베이킹에 대한 재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흥미를 잃는 포인트를 제거해 보기로 했다. 재료는 5개 이하로, 휴지 시간도 없는 레시피를 찾아보기로 말이다. 그렇게해서 '파블로바'를 발견했다.




파블로바는 팬케이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폭신폭신한 솜사탕 같은 빵 위에 생크림과 과일을 얹어서 먹는 호주식 디저트이다. 내가 본 레시피 영상은 기본 파블로바랑은 조금 달랐는데 토핑은 없고 기본 빵만 만드는데 빵 속을 하늘색, 분홍색, 흰색 삼 색으로 층을 내어서 '구름빵'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재료는 계란 흰자, 설탕, 옥수수 전분 그리고 식용색소인데 색소는 멋을 내기 위한 거라 없어도 된다. 나는 지난번 베이킹 재료 상점에 갔을 때 사두었던 빨간색 색소가 있었기 때문에 분홍색과 흰색 두 가지로 층을 내보기로 했다. 식용 색소까지 있었지만 딱 한가지 옥수수 전분만 없었다. 엄마의 가루 바구니를 찾아보았지만 감자전분만 있었다. 살짝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만들어 보고 싶어 마트에 가서 1200원짜리 옥수수 전분을 사 왔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워낙 소량으로 들어가는 거라 감자 전분도 괜찮다고 했다.)


계란을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해서 흰자를 설탕과 옥수수 전분을 넣고 핸드믹서로 휘핑해 주었다. 옥수수 전분이 들어있을 뿐 머랭 쿠키와 과정은 똑같았다. 단단하게 휘핑된 머랭을 반으로 나눠 하나는 흰색 머랭으로 그대로 두고 나머지 하나는 빨간색 색소를 조금 넣어 핸드믹서로 돌려주니 딸기우유색의 분홍색 머랭이 되었다. 색이 너무나도 예뻐서 이대로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먼저 분홍색 머랭을 오븐 팬 위에 동그랗게 올려준 다음에 흰색 머랭을 그 위에 쌓고 표면을 정리해주면 끝! 휴지 시간도 필요 없다. 바로 오븐에 넣고 150도에서 30분을 돌려주었더니 머랭 쿠키와는 다르게 겉면이 갈색으로 변했다.


파블로바의 키 포인트를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 삼각대를 가져와 영상 촬영 준비도 했다. 오븐에서 꺼낸 뜨끈뜨끈한 파블로바를 살짝 식힌 뒤에 양손으로 잡고 반을 갈라주면 층을 쌓은 분홍색과 흰색 머랭 색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어쩜 이렇게 굽기 전 색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까. 너무 신이 났다.



폭신폭신한 파블로바를 한 입 먹어보았는데 내 기준에선 좀 심심한 맛이었지만 외출 준비를 하시던 아빠께 드렸더니 아빠 입맛에는 부드럽고 달달한 게 너무 맛있다고 하셨다. 파블로바의 성공 이후로 마들렌, 식빵 러스크 같이 몇 안 되는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베이킹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다시 성취감도 올라가면서 재미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경험 삼아서 베이킹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서도 정체기가 왔을 때 이것 하나만 기억해보기로했다. 

'간단하고, 재밌게, 놀이처럼'


불씨가 꺼지기 전에 흥미를 되살려준다면 좀 더 오래도록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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