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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05. 2020

[그빵사]34. 브라우니 (2)

아무것도 모를 때 보다 조금 알 때가 더 위험하다.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기억 속 브라우니는 초코맛도 진득하게 나면서 두께감이 있었다. 스펀지케이크와 초콜릿 중간 같은 느낌 정도로 윗면은 바삭해 보이듯이 갈라져있었던 것 같은데 유튜브 레시피 영상 중에서 내가 먹었던 것과 모양이 가장 비슷한 영상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먼저 필요한 재료를 살펴보니 기본 재료로 다크 커버춰 초콜릿 120g이 필요했다. 집에 있는 건 작은 키세스 모양처럼 생긴 초콜릿 칩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저울에 재보니 60g밖에 없었다. 보통 다크 커버춰는 중탕해서 녹여 쓰고 초콜릿 칩은 반죽에 그대로 넣고 쓰긴 하던데 같은 초콜릿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재료를 새로 사 오지 않고 초콜릿 칩을 쓰기로 했다.


초콜릿 칩이 반 밖에 없으니 모든 재료를 반으로 줄였다. 중탕한 초콜릿 칩에 버터와 생크림을 넣고 물엿을 넣어야 하는데 집에 물엿은 없었고 조청만이 있었다. 비슷한 느낌(?)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조청을 넣고 섞은 뒤 나머지 재료들도 함께 섞어 주었면서 생각했다.


'에이~ 뭐, 어때~!’


레시피 영상에서 나온 반죽은 아주 매끈하고 기포 하나 없는 반죽이었는데 내가 만든 반죽은 동그란 기포가 뽁뽁뽁하고 나와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도 구울 때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반죽을 틀에 붓고 오븐에다 넣었다. (심지어 브라우니 틀도 없어서 식빵 틀에다가 유산지를 깔았다.) 이제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딘가 찝찝함이 계속 남아서 '재료를 너무 대충 해서 그런가?' 하고 다시 뒷정리를 하려는 찰나 앗뿔싸! 오븐 타이머 설정을 깜박한 게 아닌가!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 정보를 보니 대략 18분 정도 지났다. 20분이 권장시간이었지만 냄새가 이상한 것 같아 꺼내 주기로 했다.


오븐에서 나온 브라우니는 내가 알던 브라우니가 아니었다. 원래의 브라우니 표면은 물 없는 사막 바닥 같은 표면이라면 내가 만든 건 구멍이 송송 뚫린 달 표면 같았다. 3시간 냉장하라는데 혹시 냉장고에 식히면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역시 똑같은 모양이었다.


맛은 어땠을까? 지금까지 반죽은 이상하게 나왔던 적은 있었어도 맛은 꽤나 시중에서 파는 맛과 비슷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반 정도 포기한 마음으로) 브라우니를 한 입 먹어 보았는데 정말 정말이지... 맛이... 없었다. 그냥 맛 자체가 없는 맛이었다. 가족들도 언제나 ‘어머~ 너무 맛있는데?’하면서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며 기를 살려줬는데 이번 브라우니는 먹자마자 가족들이 말이 없어졌다.


쫀득하고 달달한 브라우니를 먹고 싶었는데 이런 느끼한 무맛의 빵이 만들어지다니! 하지만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과정을 쭉 살펴보면 브라우니는 잘 나올 수가 없다는 걸 당연히 알고는 있었다.




베이킹을 아예 모르던 초창기에는 모든 것을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다. 버터의 양은 1g까지도 정확히 재고, 넣으라는 재료가 없으면 마트에 가서 똑같은 걸로 사 왔고, 굽는 시간, 중탕하는 방법 모두 다 레시피에 적혀있는 그대로 따라 했다. 그 덕분에 베이킹은 실패한 적은 거의 없고 2% 부족할지언정 얼추 모양과 맛은 따라잡는 빵이 완성되곤 하였다.


이제 열댓 번이 넘는 빵을 만들고 나니 베이킹에 대한 감이 얼추 잡히기 시작했다고 착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파티시에가 된 것처럼 중량도 무심하게 툭, 녹이는 것도 툭툭, 하라는 대로 똑같이 하지 않고 대충 엇 비슷하게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인지 두어 번 전부터 케이크 반죽은 거품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일이 생겨났음에도 완성품이 못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넘겼는데 이번 브라우니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 보다 조금 안다고 나댈 때가 더 무서운 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베이킹 초반부터 뇌피셜을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했건만 금세 잊어버리고 멋진 허울만 따라 하려고 했다. 브라우니는 그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던 것이었다. 초심을 찾으라는 말이 이럴 때 나오는 거구나 싶었다. 정확한 계량에, 똑같은 재료로 다시 한번 구워봐야지.


추억 속 그 맛을 내 손으로 재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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