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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04. 2020

[그빵사]33. 브라우니 (1)

로망을 실현하다.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사람들마다 각자 저마다 품고 있는 로망의 크기와 종류는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거대한 유람선을 꿈꿀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가족들이랑 먹는 소박한 식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로망은 '베이킹'이었다.


대학에서 전공하던 과가 속해 있던 단과대학 4층에는 식품영양학과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빵집이 하나 있었다. 솔직히 빵집이라고 하긴 뭐하고 작은 실습실 안에서 직접 만든 브라우니나 마들렌 같이 구움 과자를 팔던 곳이었다. 그곳의 브라우니는 웬만한 제과점보다 맛이 좋아 자주 간식으로 사 먹곤 했었는데 계산을 하면서 실습실 안에서 빵을 만들던 애들을 볼 때면 나는 부러운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느꼈던 것 같다'고 확신 없이 말하는 건 그땐 그게 부러운 감정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애들의 모습은 드라마에 나오는 파티시에를 보는 것 같이 멋진 모습은 아니었다. 계산하러 나온 애의 안경 너머의 얼굴은 퀭-하니 피곤해 보였고,  안 쪽에 있던 열심히 반죽을 하던 이들의 영혼은 반쯤 나가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에 있는 나를 상상해보고는 했었다. 아무런 이유는 없었다. 그냥 빵을 굽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구들한테 넌지시 "나도 저 동아리 들어갈 수 있나?"라고 물어보면 "글쎄, 저긴 식품영양학과만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삶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때면 언제나 빵이 있었다. 빵을 사 먹든, 만들어먹든 간에 그 삶 속엔 빵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첫  화에서 말했다시피 베이킹이라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막연한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어렵고 복잡해 보여서 이런 건 전공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혹은 직업으로 삼기 위해 전문 기관에서 수강을 하는 방식으로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혼자서 취미로 할 수 있을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었다.


그러던 내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가 혼자서 빵을 만들고 있다니! 비장한 각오로 '내 로망을 실현하겠어!'라며 홈베이킹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면서 마음의 장벽을 조금씩 깨트리게 되었고 코로나로 인해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시작이 아무렴 어떠랴. 비로소 나의 로망을 실현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물론 상상하던 것처럼 그렇게 달콤하고 예쁘지만은 않았다. 재료비 부담감에 기가 눌릴 때도 있고, 팔뚝은 헬스라도 한 듯이 근육이 잡혀가는 것 같고, 빵을 만들고 사진을 찍은 그 뒤에는 설거지 거리가 가득 쌓여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했다.


베이킹을 하고 있으면 오랜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들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냥 하면 되는 걸 왜 그렇게 못한다고만 생각했을까?' 식품영양학과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운 감정이 들었을 때 시작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내가 원하던 꿈의 삶에 더 가가가 있었을까?


 이런저런 추억에 잠긴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때 작은 실습실에서 팔던 브라우니가 먹고 싶어 졌다.


-(2)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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