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멤버로 우리보다 대체로 한 수 아래의 전력을 보이는 팀들을 대상으로 경기 끝나기 직전 꼴로 비기거나 이겼을 때, 어찌 됐든 꾸역꾸역 이겨서 64년 만에 아시안컵에 우승한다면?! 클린스만 감독은 세간의 우려를 떨쳐내게 되나 싶더라.
아이러니하게도 내심 우승을 바라면서도 우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이기면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과 아시아 축구 일인자라는 영예는 얻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축구가 퇴보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는 전년도 우승팀이 이듬해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우승 속에 가려진 리빌딩 실패, 문제점이 가려져 장기간 암흑 속에 갇힐 수 있다. 한때 왕조를 구축한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장기간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 우리나라 프로야구와 축구를 비롯 여러 종목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축구가 우승했다면 바로 이들 팀들의 행보를 걸을 것만 같았다. 우승이라는 결과로 인해 과정에서 드러났던문제점을 보완하지 않고 기존의 방침을 고집하다 향후 당연시 됐던 월드컵 지역예선 통과도 못할 수 있는 등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정 넘어 졸전의 경기 끝에 져서 기분이 당장은 안 좋았지만, 문제점과 문제 인식이 제대로 부각돼 잘됐다 싶기도 한 것. 이 기회에 확실히 반성하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서 개선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정치, 문화예술 분야, 그리고 직장에서도.
만약, 직장에서 역량은 낮은데 당장 1년 먼저 운 좋게 승진하는 게 꼭 좋은 것일까?! 1년 뒤에 역량을 차곡차곡 쌓은 뒤 승진하는 게 좋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