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추억을 남겼다. 생애 첫 천문대에서의 별 관측, 그리고 연천의 여행 맛집 중 대표작이라고 꼽히는 재인폭포와 호로고루 여행을 하루에 다녀왔다.
우선 여행의 발단은 별 관측이었다. 지난여름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무산된 영월 별마로 천문대에서의 별 관측. 10월 1일 임시공휴일 확정 이후 그 못다 이룬 천문대 별 관측을 상대적으로 가까운 양평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잡았다가, 또 행선지를 가평 등 양평에서 접근성이 좋은 쪽으로 계획했다.
그러다, 아내와 나는 그냥 연천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이끌렸고, 결국엔 당일치기로 아침에 출발해 연천을 방문한 뒤 밤에 예정된 양평 중미산천문대 별 관측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동차가 없는 데다가 평소 운전을 안 하며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행선지 특성상 차가 필요해 사전에 공유 자동차 쏘카로 08:20~23:50 시간대로 예약해 이용했다.
연천은 대중교통만을 이용해 수년 전 구석기축제 행사 때 방문, 축제를 즐기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허브빌리지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때의 기억이 구석구석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너무 좋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뇌리에 남아있다. 그래서 먼저 예정한 양평 천문대 일정과 동선 상 좋지 않음에도 연천을 여행 행선지로 선택한 것이다.
연천 <호로고루>
이번 여행 일정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필자는 <한양도성으로 떠나는 힐링여행>의 저자이다. 그러다 보니 성곽에 관심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는데, 고려시대 등 조선 이전 시대에 성곽을 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곳이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늘 있었었다. 그런데 호로고루는 고려도 아니고 무려 삼국시대의 성이다. 물론, 발굴된 부분을 중심으로 일부만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여행의 첫 행선지로 서울 우리 집에서 75km의 거리,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 위치하고 있는 호로고루에 단숨에 달려갔다.
마주하자마자 박수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봐서가 아니다. 그저 자연경관이 아름다웠다. 심지어,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 수많은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아니 허리를 꺾어 우리를 맞이했음에도 나는 아쉽다는 마음이 안 들더라. 아내는 아쉬워했다. 이 좋은 가을 날씨에 해바라기까지 만발했으면 황홀하긴 했겠지만, 일단 조각구름 몇 점이 데코를 이룬 파란 가을 하늘과 뒤로 흐르는 임진강, 성 주변부의 잔디와 꽃밭 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멀리 광경까지 좋았던 이유는 사방팔방 멀리까지 높은 현대식 건물이 전무했기 때문이 아날까 했다. 그래서 360도 모든 방면에서 아름다운 자연 관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호로고루 동벽과 그 남쪽 치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고구려의 성벽이다. 그런데 이곳은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로, 신라가 점령하기도 했으며 이때 신라군이 보수하였다. 극히 일부라 아쉽지만 고구려와 신라의 성벽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고구려, 신라의 성벽!?
몽촌토성 같이 토성처럼 옛 시대의 토성이 있던 터에 공원 등을 조성하거나 기념하는 사례는 더러 알았지만 이 시대의 성벽이 존재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 정도의 유서 깊은 유적이면 교과서에서 왜 못 봤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1990년대 후반부터 발굴이 시작돼 2010년대까지 진행되었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듯하다. 그래도 이곳에서 펼쳐지는 해바라기 축제 덕에 이미 알고 계신 분이 많기는 하다.
성벽 돌을 자세히 보니 구멍이 송송 나있는 게 인상 깊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현무암이었다. 고구려 성벽의 95%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쌓았단다. 설명문을 보니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은 돌이 질기고 깨기가 힘들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고구려의 석공들의 기술이 얼마나 뛰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라의 석공들이 성을 차지했을 때 현무암을 다루는 기술을 단기간에 익힐 수 없어서 멀리서 편마암을 가져와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성에 올라 환상적인 광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한양도성에서 바라본 경관 이후로 최고의 경관이었다.
일대에는 성과 해바라기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먼저는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의 조형물들. 망향단과 철조망 등이 있었다. 해바라기 역시나 통일바라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한과 가까운 곳이라 자연스럽게 이러한 스토리가 구축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쪼록 스토리텔링을 굉장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바라기 말고도 꽃밭 및 꽃 터널 등이 있었으며, 포토존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
해바라기 축제로 유명한 호로고루는 해바라기가 만발할 때 오면 환상적인 곳일 것이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없어도 특히 날씨가 맑은 날이라면 힐링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드 넓은 평지와 그 가운데 고구려의 성 그리고 그 너머로 흐르는 임진강까지 환상의 조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가장 기대한 곳이었는데 기대한 것 그 이상이었던, 연천 호로고루에서의 짧게 머무른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점심을 먹은 뒤, 원래 계획과 달리 어느 한 곳을 들릴까도 생각했지만 알짜배기에만 가기로 한 첫 계획대로 또 하나의 많은 기대를 한 장소 재인 폭포로 곧장 향했다.
연천 <재인폭포>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제주도에 갔을 때 천지연 폭포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 멋지다고 느꼈었겠지만 뇌리에 크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재인 폭포는 방문 전부터 정말 멋진 폭포를 본다는 생각에 기대치가 컸었다. 기대치가 크면 실망감도 그만큼 큰 게 국룰이지 않은가? 그런데 호로고루와 마찬가지로 기대 그 이상을 안겨다 주었다.
재인폭포는 따로 입장료는 없지만 아래 주차장 입구에서 약 1km 떨어진 폭포 지점까지 걸어가야 했다. 혹은, 운임료를 받고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대인 왕복 2,000원!? 나는 굉장히 싸다고 느껴졌다. 서울 하늘공원 맹꽁이 버스 요금이 왕복 3,000원으로 더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저 없이 셔틀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다음 일정이 있었고 날씨도 더웠기에 대기 시간이 있더라도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셔틀버스 출발지 지점에는 황화 코스모스 등의 꽃밭이 환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지나가는데 짧은 줄 알았던 이 꽃밭은 끝이 어디인가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방대했다.
뜻밖에 방대한 꽃밭의 등장과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기분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재인폭포에 도달했다. 폭포의 정확한 지점은 모른 채, 일단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출렁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는데... 어!? 정면에 재인 폭포가 흐르고 있더라. 딱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최고"였다.
이 추상적인지만 가장 높은 평가를 뜻하는 단어가 재인폭포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했다. TV에서 본 유명 관광지 같았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고,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해 주었다. 흐르는 물줄기와 그 종착점 에메랄드 빛 물 웅덩이가 대단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까지. 나의 유일한 유럽 여행지, 터키에서 봤던 계곡이 생각났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곳이 있었다.
보존을 위해 폭포 아래 일부 조성된 데크길 외 폭포와 협곡 쪽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쉬웠지만 덕분에 이렇게 멋지게 보존되고 있었기에 이러한 조치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둘레길을 통해 동편에서 재인 폭포를 보다 가까이서도 보았다. 그 북쪽에 선녀탕이라는, 딱 보면 왜 선녀탕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지점도 있었는데 역시나 에메랄드 빛깔을 자랑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답더라.
환상의 꽃밭이 있긴 했지만, 재인폭포가 있는 일대는 사실상 볼거리는 재인폭포가 다였다. 그렇지만 재인폭포 그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연천에 가신다면 재인폭포는 꼭 가보셨으면 한다. 짧게 머무르겠지만 기대치를 확실히 충족하는 곳이다.
*카페 율믜당과 옥천함흥냉면(본점)
재인폭포 관광 뒤에는 양평의 신상 카페 "율믜당"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오히려 층고가 높은 등시원시원한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다. 정원도 있었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맛있고 가격은 저렴했다. 커피도 빵도 모두 다. 소금빵이 3천 원이 안 됐고, 아메리카노도 3,500원으로 카페의 규모와 맛의 수준에 비해 저렴했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목적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카페를 찾는 것을 권하겠지만, (물론 율믜당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최소한 평타 이상, 개인적으로는 상위권이라생각하지만) 일정 수준의 분위기에 저렴하고 맛있는 곳을 원한단면 여기를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카페에서 나와서는 바로 양평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저녁 식사 장소인 양평의 옥천 함흥냉면 본점이다. 외관을 딱 보면 여긴 틀림없이 맛집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회냉면 나는 물냉면을 선택했는데, 입맛 까다로운 아내가 첫 젓가락에 바로 극찬했다. 아내는 여행지에서 맛있는 거 먹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하는데 옥천 함흥냉면을 먹고 난 뒤 재인폭포 관광과 함께 이 저녁식사로 이번 여행은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맛집이다.
양평 <중미산천문대>
저녁 식사 후 시간이 잠시 남아 양강섬 일대를 들렀는데 깜깜해서 제대로 관경을 보진 못했다. 만약 좀 더 이른 시간에 천문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면, 양강섬과 옆 양평군립미술관을 들러보시는 것도 좋으실 것이다. 밤 20시가 넘어 중미산천문대에 드디어 도착했다.
사실 1주 전부터 이날의 날씨는 "매우 맑음"이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구름과 태양이 동시에 표시가 되더니 이날 저녁까지도 하늘에는 일부 구름이 있기도 했다. 기상상황으로 못 본다면 1년 내 티켓을 소지하고 온다면 다시 볼 수는 있지만, 좋은 날씨에 맞춰 일정을 다시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다행히 앞선 연천 여행이 대단히 만족스러워서 별을 못 보더라도 아주 실망스럽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안 보면 다음에 또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꼭 봤으면 했다.
천문대에 도착했고, 테라스에 갔더니 육안으로도 별이 보이더라. 오늘 망원경 관측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별 보기 전 먼저 영상 교육이 진행됐다. 유익했지만 조금 더 짧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날 여행의 피로도가 쌓였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천문 관측의 시간 이전에는 직원께서 놀라운 성능을 자랑하는 레이저를 하늘의 별에 직접 쏘면서 설명을 해주셨고, 이후에 기다리고 기다렸던 천문 관측이 시작됐다.여러 참석자들이 4개 망원경에 각각 줄을 서서 돌아가며 짧게 관측하는 방식이었다. 실내에 위치한 가장 큰 메인 망원경으로는 "토성"을 봤다.
미니미 캐릭터를 보듯 아주 작고 귀엽게 마치 그림과 같은 느낌이었지만 토성의 시그니쳐인 고리까지 책에서 봤던 그 토성을 실물로 볼 수 있어서 인상 깊었다. 다른 별들도 망원경을 통해 확대해서 볼 수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긴 했는데 사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기대한 것과는 다소 다른 그림이긴 했다.
그렇지만, MZ세대를 포함 많은 관광객의 니즈는 충족되었다. 왜냐하면 별을 잘 볼 수 있도록 카메라(아이폰, 삼성 갤럭시) 설정을 알려주셨고 토성은 개인 폰으로 사진촬영까지 도와주셨기 때문이었다. 나의 폰은 아쉽게도 사양이 안돼 불가했고 아내는 설정을 잘하지 못해 사진을 못 남길뻔했지만 도움에 친절히 응해주셔서 인생 별 사진을 몇 장 확보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꼭 가고 싶었던 천문대 별 관측, 지난여름 기상상황으로 무산됐던 아쉬움을 이번에 털 수 있었다. 운 좋게도 좋은 날씨로 인해 한 번의 방문으로 별 관측을 마칠 수 있어 감사했다.
야간에 이뤄지는 천문대 관측 특성으로 인해 여행 일정 짜기가 힘들었지만, 여행지가 기대 이상이었기에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천문대 관측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꼭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연천 재인폭포와 호로고루 방문은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만족하실 것이다 확신한다.
봄에 찾았던 논산 딸기축제와 논산에서의 추억 이후로 오랜만에 이뤄진 연천 여행과 천문대 관측 당일치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