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원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10. 천사를 만나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여러 연주자들을 데리고 재활원에 찾아와서 우리를 위해 음악을 들려준다고 했다.
재활원에서 뭘 한다고 모이라고 하면 거기에 반대하거나 모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갈 곳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딱히 따로 할 일도 없는데 안가면 뭘 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라 가라 하는 게 싫었다.
특별한 절기, 시시때때로 후원을 하네, 돕네 하면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나는 그들이 탐탁지 않았다.
나는 불우이웃도 아니고, 거지도 아니다. 음악엔 관심도 없고 축구할 시간만 뺏기는 거 같아 기분이 상했다. 그런데 나만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다들 연주를 들으러 가버리고 기숙사 방에는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얼핏얼핏 들리는 음악 소리는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얼마 있다 집에 갔는데 떡하니 바이올린이 있었다. 어머니가 사다놓으신 거였다. 당황스러웠다.
식구들은 바이올린 배우게 된 거냐며 열심히 해라, 게을리 하지 말아라 등등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재활원에 돌아가니 악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 교실에는 꽤 많은 악기들이 쌓였다.
가까이서 본 바이올린, 첼로는 매우 신기했는데, 이게 뭐라고 어머니는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 것을 구해오셨을까. 어머니가 사주셨으니 배우긴 배우겠지만, 재미가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어떤 놈들은 벌써 악기에 흠집을 냈다. 바이올린으로 방패를 삼고 활로는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오셨다.
우리에게 악기를 가르쳐 주기로 한 분은 강민재 선생님이었다. 강민재 선생님은 재활원 근처 교회 교인이었다. 교회를 다니시면서 재활원을 알게 됐고, 애들이 운동장에서 굴러 다니길래 뭘 하나 싶어 가까이 와서 보니 굴러다니는 게 축구하는 거였다는 데에 적잖은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그 후로 우리가 자꾸 눈에 밟히고 안쓰럽고 딱했다는 것이다.
그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았으며, 우리를 보고 있었고, 간혹 후원금을 보내오기는 했지만,
직접 찾아 온 사람은 강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의 가장 즐거운 일과이자 삶을 버티게 해주는 축구가 멀리서 보기에 그저 흙바닥에서 먼지 일으키며 굴러다니는 걸로 보였다니. 나는 이런 점이 참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동정심이나 거부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심하고 비참해 보이기도 한다.
선생님은 아마도 좋아라하며 굴러다니는 우리 얼굴은 보지 못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은 저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악을 알려 주는 것, 악기를 가르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면 삶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먼저 당신의 연주를 들려주어 경험하게 하셨고, 마음을 열도록 하셨던 것이다.
내 맘이야 어쨌든 내겐 악기가 생겼고, 선생님은 주말마다 꼬박꼬박 오셨다. 재활원의 대부분 학생들이 배우게 되면서 선생님들을 여럿 데리고 오셨다. 다른 선생님들은 더러 바뀌고는 했지만, 책임을 맡은 강 선생님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 주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