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은

플라잉 휠체어 11화

by 두꺼운 손가락

바이올린을 잡아 보았다.




11. 바이올린은



멀쩡하게 태어났던 내가 소아마비를 앓았던 날 만큼이나 바이올린을 만난 날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날이었다.

물론 그 날, 나는 내가 평생 음악으로, 바이올린으로 살아가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 잡아 본 바이올린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내 몸 여기저기에 알지 못하는 생채기가 나도록 운동장을 굴러다녔다. 축구하면서는 긁히고 피가 나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바이올린은 완전히 반대였다.


바이올린 할 때 내 몸의 움직임은 한 평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바이올린은 5분만 들고 있어도 온 몸이 저려왔다.

한 공간에서 이 놈 저 놈 그놈 할 거 없이 섞여서 소리를 내니까, 머리가 울리고 내 소리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선생님이 주신 악보는 너무나 간단했다. 왼손은 아무것도 안 눌러도 되고 그저 오른손으로 활을 긋기만 하면 되는데, 귀신의 집 소리가 났다.

다행인 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 모두에게서 여러 종류의 괴기스런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마치 사람 구실 못하고 시골구석에 쳐 박혀 있는 내 인생 같았다.

선생님이 내던 아름다운 소리는 온데간데없다. 소리가 왜 제대로 나지 않는 건지 화가 점점 치밀어 올랐다.


선생님은 바이올린이란 게 원래 처음부터 소리가 잘 나지 않는 것이며, 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활을 쓰는 방향을 찾을 수 있고 힘 조절도 가능해지고 머리로 계산해서는 소리를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니 오기가 생겼다.


내가 무슨 수가 있어도 오늘 안에 제대로 된 소리를 내고 만다.

악보를 펼치고 악기를 들었다. 이상하다. 아무리 활을 그어도 괴상한 소리만 났다.


선생님이 선보이신 깔끔하고 예쁜 소리가 과연 내 악기에서도 날지, 악기가 이상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선생님이 가시고 난 후 모두들 함께 연습했는데, 자신의 삑삑 대는 소리에 지쳐서 하나둘씩 악기를 넣고 축구하러 나가버렸다.


나는 계속 소리를 냈다.

(연습이 아니다. 그냥 소리다.)

100번을 긋고, 200번을 해보니 비명소리 같은 괴상한 소리가 조금씩 나아졌다. 미세하지만 소리가 나아지는 것을 느끼니 점차 재미있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실에 아무도 없고 나만 남아 있었다.

오히려 잘 됐다. 다른 사람 소리 신경 안 쓰고 더 집중할 수 있다.

차근차근 활을 잡고, 악기를 들어서 악보에 적혀 있는 음들을 소리로 옮겼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며 나를 부르셨다.

“얘. 강일아. 이강일!”

“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직도 여기 있었어? 지금이 몇 신데. 밥 안 먹어?”

“네?”

“아니. 얘가 바이올린 안 배운다고 할 때는 언제고. 왜. 한 번 해보니까 이게 딱 내 거다 싶니?”

내 거?

“팔 안 파? 어여 와서 밥 먹어. 오늘은 이제 그만 해. 오늘만 하고 안 할 거야?”


생각해보니 팔이 아프긴 아팠다.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악기를 안 하니까 팔이 떨어질 듯 점점 더 아파왔다.

“어여 정리하고 나와.”


“네. 선생님. 이거 조금만 더 하다가 갈게요. 밥은 안 먹어도 돼요.”

악기 정리하고 밥 먹으러 갔다가 다시 오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팔을 얼마나 많이 사용해야 하는 일인데, 지금은 그런데다 팔을 쓸 수 없다.

나를 보던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조금만 더 하다가 와. 그러다가 오늘 니 팔 어떻게 되겠다. 얘.”


선생님이 문을 닫고 가신 걸 확인하고 다시 악기를 들었다.

그 순간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소아마비를 앓은 후 점차 마비가 풀리면서 다리는 덜렁거리고, 내 왼쪽 어깨는 못 움직여도 팔꿈치까지는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오른팔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바이올린을 할 때는 왼손으로 악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활을 쥔다. 그래서 왼팔은 팔꿈치까지만 들으면 되고 오른팔은 자유로이 쓸 수 있어야 하는데, 내 몸의 상태는 바이올린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너무 기가 막혀 자꾸 왼팔을 들어보고 오른팔을 한 바퀴 돌려봤다.

내 상황에서 최적의 악기는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바이올린만큼 지금의 내게 걸 맞는 건 없었다.

정말 신기했다.


왼팔로 바이올린을 들어 올려야 하는 위치. 딱 거기까지가 내 왼팔을 올릴 수 있는 지점이다. 몇 번이고 악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해봤다.


이게 운명인 건가 그저 신기한 일인 건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진도를 지나 악보를 넘겨 뒤쪽까지 해봤다. 시간이 오래되어 팔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렇다고 악기를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점점 소리의 형태가 갖춰지는 게 느껴졌다.

그날 그 자리에서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호만 1권을 다 끝내버렸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팔을 써야 하는데 그거도 힘들고 시간이 아까웠다. 팔의 힘을 아껴야 했다.


남들은 3~4개월 이상 걸린다는 호만 1권을 하루 저녁에 해치웠다.



이전 11화천사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