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플라잉 휠체어 12화

by 두꺼운 손가락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 기다려졌다.




12. 내 운명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려웠던 부분이 익숙해지고 노래를 노래처럼 연주할 수 있게 되어지는 과정이 흥미롭고 좋았다.

축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바이올린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축구하면서도 바이올린 생각이 나서 딴 생각을 하다가 공을 놓치기 일쑤였고, 저쪽에서 날아오는 공을 받으려면 손이 꺾일 수 있고, 이 공을 놓치지 않으려면 손바닥에 상처가 나는 건 100%였다.

바이올린을 생각하니 손을 다칠 거 같아 자꾸 몸을 사리게 되고, 몸을 사리게 되니 당연히 점점 축구를 못하게 되고, 못하니까 흥미가 점점 없어졌다.


그래도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건 즐거우니까 아예 딱 끊어버린 건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바이올린 할 때만큼 좋지가 않았다. 노래다운 노래를 연주할 수 있게 되니 바이올린이 더 좋았다.


30명가량의 원생들이 악기를 배웠는데, 서로 가르쳐 주고, 함께 경쟁하듯 연습하고, 누군가 연습을 게을리할라치면 우리끼리 격려하고 혼내고 채근하면서 연습량을 늘려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이올린이 더 좋아졌다.


강민재 선생님은 정기적으로 우리를 데리고 음악회장을 다니셨다.

연습도 중요하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연주회장에서의 실연을 접하는 것보다 더 큰 공부는 없다는 취지에서였다.


멋있는 연주회장, 격식 있는 연주복을 입은 연주자들, 불이 꺼지면 연주자들이 걸어 나와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나는 언제쯤이면 저런 멋진 무대에서 연주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게 될까. 음악회를 가기 전부터 연주회장을 상상하면 언제나 가슴이 콩당콩당 뛴다.


하지만, 실상 우리들이 한 번 밖에 나가려면 얼마나 요란한지 모른다.

혼자 다닐 때도 쉽지 않은데, 음악회를 가려면 여럿이 떼로 다니니 우리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막말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함께 있으니 견디기가 나을 때도 있지만, 대놓고 들으라고 하는 말들을 같이 들으면 어떨 때는 참는 게 더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화를 내고 싸울 수도 없는 일인 것을.


그래도 음악회장에 가는 것은 너무 좋았다. 재활원을 벗어나 바람을 가르며 길거리를 느끼는 것도 좋았다. 불빛이 환히 비치는 멋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것도 참 좋았다.


멋있는 음악회장은 마치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는 마법의 문 같았다. 도착할 때까지 오래 걸린 시간, 음악회 간다고 목욕까지 하고 나왔건만 지저분하게 흐르는 땀, 전염병 환자 보는 듯 한 사람들의 시선과 욕지거리, 이 모든 것을 견디고 나면 불이 꺼지고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바이올린이 너무 좋았다. 음악이 내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모르게 기도하고 기도했다.

바이올린을 할 줄 안다고 내가 뭐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상상을 해 보아도 내 머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다 보면 뭔가 길을 열리지 않을까? 그저 막연한 기도를 시작했다.


음악회를 한 번 다녀오면 더욱 열심히 연습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강 선생님은 우리를 콩쿠르에 내보내기로 결정하셨다.


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콩쿠르가 몇 개 있었는데, 제법 규모가 컸다.

나는 콩쿠르가 뭔지도 몰랐고, 콩쿠르에 나간다는 것이 뭐를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선생님이 이제부터는 어제보다 더 많이 연습해야 하고, 더 집중해서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3등 안에 들면 상품도 있고, 무대에서 연주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눈에 불을 켜고 연습했다.


콩쿠르에서 연주하려면 악보를 외워야 하고 연주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틀리면 안 된다. 10분, 15분의 독주를 위해 집중력을 키워야 했다. 단순히 악보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음악회장에서 봤던 연주자들의 연주를 떠올려 봤다. 아무리 간단한 곡이라고 하더라도 연주자들마다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그렇다고 감정을 과다하게 표현하면 어려운 패시지에서 중요한 테크닉을 놓칠 수도 있다. 이전과는 다르게 디테일한 연습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연습 계획을 세웠고, 서로 체크하고 교실에서 우리끼리 모의 콩쿠르도 열었다.

우리는 경쟁자이자 동료로서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처음 나간 콩쿠르에서 우리 성세재활원 원생들이 1,2,3등을 휩쓸었다. 콩쿠르 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손으로 휠체어를 쿵쿵 치고 난리가 났다.

작년까지 1등 2등을 도맡아 하던 다른 재활원 선생님은 우리를 보며 기가 막혀했고, 그쪽 학생들은 우리를 째려보고 분해했다. 콩쿠르들이 거듭될수록 다른 재활원들에서는 상을 타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콩쿠르 장에서 만나면 우리에게 비결이 뭐냐고 대놓고 물었다.


비결이랄 게 뭐가 있나. 연습밖에.


바이올린은 점차 내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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