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플라잉 휠체어 9화

by 두꺼운 손가락

재활원 안에서는 내가 공부를 제일 잘 했다.




9. 휠체어


그도 그럴 것이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은 나뿐이었다.

더러 1년이나 2년 정도 다녔다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그런 덕에 난 꽤 으스댔고, 방장도 됐다. 애들은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 중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내게 물으러 왔다. 난 이런 건 국민학교에서 다 가르쳐 주는 거라며 우쭐거리기 바빴다.


재활원 기숙사 입구에는 바퀴달린 의자가 몇 개 있었는데.

지금이야 어딜 가든 휠체어를 보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 되었지만, 모든 물자가 부족하고 멀쩡한 사람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엔 휠체어는 먹지도 못하는 쓸데없는 물건이었다.


혼자 움직인다고 하면 기어 다니는 것 밖에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휠체어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저 의자에 올라앉기만 하면 때로 멀쩡한 사람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상엔 내가 아는 것보다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확실히 몸이 덜 피곤했고,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슝하고 내려 갈 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날아가는 게 이런 기분일까.

바람을 가로 지르며 머리카락이 휘날릴 때는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휠체어의 최대의 단점은 계단을 다닐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땅이 조금만 고르지 않아도 바퀴를 굴리는 게 두 배 이상 힘들었다.

차라리 기어가는 게 속편했다.

그래도 휠체어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물건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재활원의 휠체어는 필요한 사람 수만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얘기인즉슨 몇 개 안되는 휠체어를 차지하는 것은 피 터지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승리는 영원한 승리가 아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싸움을 치러내야 하니 말이다.

몸이 부실한 놈은 이 싸움에 낄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누구든 한 사람만 차지 할 수 있다.

오늘 만큼은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휠체어를 타고 싶은 놈이 휠체어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를 향해 가장 먼저 출발한 놈이 앉는 것이 아니다.

늦게 출발하더라도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장애가 좀 덜한 놈, 아니면 앞에 있는 놈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힘세고 못된 놈이다.

그래야지 오늘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휠체어는 사람을 혼자 움직이게 해 주는 신박한 물건이 아니라 싸움의 발단이 됐고, 올라간 자는 의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성적순으로 하면 난 매일 탈 수 있는데 바닥에서 보면 오늘의 저 새끼는 정말 짜증나고 재수가 없다.


휠체어가 너무 타고 싶은 날은 그놈들, 다리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놈들에게 어머니나 동생이 사주고 간 사탕과 과자를 몰래 쥐어 주었다. 그러면 그 애는 덕분에 휠체어를 탈 수 있었다.

휠체어는 분명 신세계였지만, 아주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휠체어는 또 하나의 욕망이었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나는, 내 친구들은 늘 더러웠고, 바짓단은 닳고 닳아서 점점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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