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플라잉 휠체어 16화

by 두꺼운 손가락

수제 장롱을 만드는 공장으로 배치 받았다.




16. 사회생활


일하는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말을 할 줄 모르니 그게 더 답답하고 어려웠다. 어떻게 어떻게 물어보긴 했지만,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는 데 그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작업 후엔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다.


단어를 외우고, 함께 일하는 일본인 친구들이 하는 얘기들을 귀담아 들어보려 애썼다. 자꾸 물어보고 대화를 시도하면서 점차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짧지만 대화가 가능해졌다.


일본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들이 악기를 다룰 줄 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라했다. 자기들은 악기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더 놀랐다.


이렇게 좋은 사회적 분위기와 배움의 기회, 게다가 제대로 된 직장까지 가질 수 있는, 장애인을 사람대접 해 주는 선진국 사람들이 악기 하나를 배워본 적이 없다니 말이다.


장애인이 악기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참 신기했다.

한국에선 직장에 다니는 장애인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누군가가 키보드와 바이올린을 구해다 주었다. 쉬는 날에 동료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들려주었다. 연주를 본 누가 우리를 추천해 주어서 벳부 지역축제에 가서 폼 잡고 연주를 하기도 했다.


여기 처음 왔을 때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배우러 왔다는 생각에 주눅 들었는데, 바이올린 덕분에 꿀릴 게 없어졌다.

우리를 본 일본 장애인들은 한결같이 놀라워하고, 자신들은 악기를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며 너무나 부러워했다.


장애인을 위한 도로 포장, 버스에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게 하는 장치, 모든 장애인이 개인 휠체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어떤 일이라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나라인데, 악기 하나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니 묘한 뿌듯함이 생겼다.


재활원에서 지낼 때는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어떤 직업 수업도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태양의 집에서 지내며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니 자연스레 작업에 재미가 붙었다.


장애를 가졌음에도 장인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을 보며 희망이 생겼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남들보다 손가락 근육이 잘 발달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세밀한 기계조작에 금세 능숙해졌다.


덕분에 근무평가가 좋게 나와서 6개월 후에는 다른 공장의 일도 배울 기회가 주어졌다.

나와 차인홍은 함께 인쇄소로 자리를 옮겼다.


인쇄 작업과정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재미있어졌다. 책을 만들기 위해 종이가 잘라지고, 크기와 재질이 다른 종이들을 모으고, 종이마다 냄새가 다르다는 것도 여기서 처음 알게 됐다. 인쇄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랬다.


월급을 받아 들었을 때의 뭐라 말할 수 없는 짜릿함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내 힘으로 번 돈으로 무엇인가를 살 수 있었다.


처음 올 때는 어떻게 지내게 될까, 걱정, 두려움, 설렘이 있었는데 사람들도, 작업에도 익숙해지고 희망도 생기니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는 다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 두려움, 설렘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고, 밑바닥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서웠다.


일본 장애인들에게 내리시는 축복을 한국에 있는 장애인들에게도 나눠 내려 주시면 정말 좋겠다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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