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잉 휠체어 19화
일단 연습을 시작했다.
19. 다시 연습
내가,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불안하지만 적어도 기대를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어떻게 될지는 몰랐지만, 함께 하다 보면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램도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죽자 사자 매달렸다.
소리 한 번 낼 때마다 입에서는 ‘주여…’가 열 번도 더 넘게 튀어나왔다.
일단 연습을 시작해서 내 소리에 집중하면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걱정이나 불안감이 사라졌다.
연습을 멈추면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벼랑 저편 끝까지 몰고 갔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연습에 몰두했다.
재활원에서 몇 년 배우기는 했지만, 전공하는 사람들처럼 집중 레슨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조용하게 소리를 다듬을 수 있는 연습공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프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테크닉과 소리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벳부 어디에선가 깔깔거리며 신나게 유행가를 연주하던 그런 소리로는 연주회장의 무대에 설 수 없었다.
1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던 손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돌아가 활긋기와 음계부터 다시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손가락을 돌렸다가는 오히려 나쁜 습관만 자리 잡혀 한 단계 높은 테크닉을 해보려 할 때 독이 되고 만다.
활 쓰기와 스케일부터 차근차근, 급한 마음을 꾸욱 눌러가며 왼손가락들을 훈련시켰고, 활 쓰기에게 대해 고민하고 소리를 만들어 나갔다.
누군가 바이올린 교칙본 한 권을 구해다 줬다.
그 책 하나를 바닥에 펼쳐놓고 넷이서 귀한 보물 꺼내듯, 한 음 한 음 눈으로 익혀보고 소리를 상상했다.
누구 한 사람의 악보가 아니니 이럴 때는 빨리 악보를 외워야 한다.
다른 종이에 옮겨 적기도 하고, 마음의 불을 켜고 연습을 하니 책 한 권 읽기 싫어하는 내가 엄청난 속도로 악보를 외워버렸다.
나뿐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것, 암보하는 것. 이건 모두 우리 안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연습에 집중하다 보니 없던 능력들이 어디서 생겼는지, 우리가 콰르텟 팀으로 모이게 된 것, 함께 모여 연습하고 살 수 있는 집이 생긴 것, 먹고 자는 데 걱정 없이 연습만 하면 되는 상황, 학교 다닐 때 교과서는 백 번을 읽어도 외워지지 않았었고 지금도 글씨만 보면 머리가 아픈데, 어떻게 악보는 이렇게 기가 막히게 외워지는지.
나의 힘이 아니고 나의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쌓여만 갔다.
처음엔 기뻤고, 감사했고, 신이 났는데 이런 일들이 수십수백 가지고 쌓이니 두려움이 다가왔다.
내 인생은 어찌 될 것인가.
넷이서 서로 들어주고, 의견을 나누고, 지적질도 하고, 싸우고, 감동받고, 그렇게 하다 보니 음악을 전혀 모르는 현옥 선생님이 눈감고 들어도 나와 차인홍의 소리를 구별해내셨다.
새로운 악보를 구하지 못할 때는 찬송가를 연습했다.
가사를 음으로 만들어 내려다보니 짧은 음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되었다.
아침 먹고 연습, 점심 먹고 현악 4중주 연습, 저녁 먹고 또 개인 연습.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한 달 두 달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연습에 몰두했다.
미세하게나마 나아지는 우리 소리에 스스로 다독이며 연습을 일상으로 만들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