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숙

플라잉 휠체어 20화

by 두꺼운 손가락

처음엔 연습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20. 합숙



없던 공간이 생기고 보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불만이 속에서 올라왔다.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30cm를 움직이더라도 팔을 쓴다.

연주자에겐 손이 생명인데, 나같이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에겐 손이 손이요, 손이 발이요, 손이 내 몸의 기둥이 된다. 게다가 왼손은 힘을 받지 못하고 팔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니 내 오른팔은 이동할 때마다 내 몸무게를 수천 번 견뎌내야 했다.


내 손은 내게 생존이다. 계단을 한 번 오르고 나면 손바닥과 손날, 손가락 여기저기에 나도 모르는 상처와 피가 맺혀있고 겨울에는 난방을 잘할 수 없어서 실내에서도 늘 손이 곱아 있었다.


당연한 일이니 그러려니 해도 어느 순간은 너무 화가 났다.

세수를 하는데 손이 너무 따가워서 살펴보니 알 수 없는 상처들에 핏물이 고여 있었다.

아까 계단을 올라올 때 생긴 상처인 듯 보였다.


내 손은 굉장히 커서 바이올린을 할 때 편하고 계단을 오를 때도 쉽게 지탱하기 좋은데, 그만큼 상처도 많이 생긴다.

오르내릴 때 몸을 틀어야 하는데 계단 폭이 좁다 보니 가끔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있곤 했다.

처음에 집이 생겼단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이보다 더 감사할 수 없었고 좋아했는데,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 맘이 이렇다.


여기저기 긁히고 피나고, 위험한 순간들이 몇 번 생기니까 고 선생님이 고민이 많아지셨다. 중간과정이야 알 수가 없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고 선생님이 고생스런 발품을 파셨을 것이다.


이사 간 곳은 아주 작은 1층 집인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에는 연탄광이 있고, 그 옆에 재래식 화장실, 방은 두 개인데 좀 넓은 방 안쪽엔 조그만 다락이 있었다. 방과 재래식 부엌은 조그만 쪽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겨울이 되면 두 분 선생님이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언제 지은 지 알 수 없는 이 집은 담요를 덮어둔 바닥만 따뜻했고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는 일어설 수 없으니 차가운 윗 공기는 내 알 바가 아니랄까.


우리는 순번을 짜서 현옥 선생님의 가사 일을 도왔다. 어차피 다 내가 먹을 건데 돕는다는 표현이 웃기지만, 바이올린 이외에는 죄다 부셔버리기만 하는 내 손으로 나름 먹을 만하게 만들려고 노력은 했다.

욕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부엌에서 돌아가며 물 받아서 씻고 화장실은 당연히 밖에 재래식 화장실뿐인데 화장실, 그게 가장 고역이었다. 우리는 재래식 화장실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나마 절뚝이는 종현이도 재래식 화장실은 못 쓴다.


옷을 입고 벗는 것, 움직이는 것 등 일상은 그 무엇 하나도 우리에게 호락호락한 것은 없다.

그중에서 가장 민감하고 때로 비참해지는 일은 바로 화장실에 관련된 것이다.

재래식 화장실은 근처도 갈 수가 없어서 요강을 사용했는데, 냄새나는 요강 처리 역시 현옥 선생님의 몫이었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창피하고, 때로는 얼굴 보기도 민망하고 말할 수 없는 여러 요사스런 감정들이 올라왔다.

돈을 받고 일하는 가정부도 아니고 그저 우리들이 기특해서 도와주시는 선생님인데, 이렇게 원초적인 밑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사람을 너무나 작아지게 만들었다.


화장실 문제는 집 안에서만 곤란한 게 아니다. 일본 공장 기숙사에서 봤던 장애인용 서양식 화장실은 꿈에서나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어디 외출을 하는 날에는 그 전날부터 식사를 조심하려 애썼다. 몸이 피곤하거나 혹여 음식에 문제가 있어서 탈이라도 나는 날에는 수습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민망한 일을 겪은 날이면 우리는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습뿐이었다.


행동이 잽싸고 머리 회전이 빠른 신종호는 언제나 다락에 올라가서 연습했다. 경사가 가파르고 대여섯 살 아이가 오르내릴 만큼 작은 계단을, 몸집이 큰 나나 제법 기럭지가 있는 차인홍이 올라가기 힘들어하는 걸 알고는 언제나 자기가 먼저 다락으로 올라가 버렸다.

첼로는 부피가 커서 어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어려우니까 한 뼘이라도 더 넓은 방이 종현이의 연습실이 되었다.


이제 남은 곳은 마당에 있는 조그만 연탄광과 방 하나인데, 연탄광으로 가려면 방문을 열어서 한 두 개라도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연습하면서 내내 연탄내를 감내해야 한다. 악보, 케이스, 몸 여기저기에 늘 검댕이를 묻혀 들어온다. 내려가는 거도 귀찮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어서 그러지 말고, 이곳에서 둘이 연습하자고 해도, 차인홍이는 저기가 좋다며 연탄광으로 가버렸다.


정말로 거기가 좋았겠나.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를 배려하면서 다른 멤버들의 소리와 최대한 섞이지 않는 곳에서 집중해서 연습하고 싶기도 했을 거다.

그렇지만 연탄 광은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서 손이고 발끝이고 죄다 얼어버리는데, 하루 종일 연습하다가 밥 먹으러 방으로 들어왔을 때 보면 힘없는 종아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어서 새빨개져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바이올린 연습할 때만큼은 나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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