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연주로
22. 무대
베데스다 콰르텟은 대전 일대에서 아주 유명한 연주자들이 되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까지 연주 의뢰가 들어왔다. 친구들이 우릴 데리러 왔고, 휠체어를 굴리며 연주장으로 갔다.
무대에 들어서면 관객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기대감으로 온 사람들, 심드렁한 사람들, 우리를 기꺼이 환영해 주는 사람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객은 당황하는 관객이다. 포스터를 보고 우리를 충분히 인지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막상 실제로 보고 당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모습이 생각보다 훨씬 불편했던 게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불쾌하고 힘든 상황을 만날 때가 꽤 자주 있었다.
모든 것에 대한 차별이 많았을 시절이라 장애인에 대한 표현들은 상상 이상으로 거침이 없었다. 무례한 시선과 무시, 인간이하의 발언들에 대해 무뎌져야 하건만, 뾰족한 무언가가 심장 아래 박혀서 좀처럼 뽑혀나가질 않았다. 그 뾰족이는 수시로 콕콕콕 내 속을 돌아다니며 쑤셔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연주뿐이다.
성경에서처럼 누군가 내게 일어나 걸으라고 외치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 말대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들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나의 외침이고, 나의 걸음이다.
언젠가부터 객석에 앉아 당황하는 사람들을 보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 있었다.
이 연주장을 나갈 때 당신들은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이런 과정들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얼마든지 놀랄만한 실력을 가진 연주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삶의 소리가 있었다.
우리 관객들에게는 감정의 순서가 있다.
흠칫하다가 차분해지며, 음악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휠체어에서 펄럭거리는 바짓단을 보며 다시 놀랜다. 그러다가 감동으로 이어지고, 위로도 받는다.
무대 위에 있으면 관객의 그런 감정이 충분히 느껴진다.
연주가 끝나면 우리 베데스다와 관객들 모두 입에서 감사가 떠나질 않았다.
연주할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진 것이 감사했고, 연주를 위해 매진하다 보니 실력이 점차 느는 것이 감사했고, 우리의 음악으로 감동받고 변화되는 관객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연주가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날카롭기만 했던 내 마음이 조금씩 평안해졌다.
불투명한 미래는 여전했지만 나의 직업은 연주자라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삐져나왔다.
우리 연주를 보고 감동받았다. 고맙다. 용기를 얻었다. 은혜 많이 받았다. 악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별의별 좋은 얘기를 다 들었다.
환한 조명, 빛나는 무대, 쏟아지는 시선, 박수, 격려, 꽃다발, 선물.
내 인생에서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본에서 지낼 때만 해도 거기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다시 돌아와 악기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으려나 했다.
내 믿음과 상상력의 한계로는 이런 일들은 생각지도 못했다. 겪어 보지 않고는 장애인의 삶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변함없는 일상은 너무 힘들었다.
팔로 바닥을 딛고 기어 다니고, 팔로 휠체어를 밀고, 바이올린을 켜고, 손으로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청소하고 부엌일도 했다.
삶은 고단했고 녹록지 않았다.
육체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무대는 현실을 잊게 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