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옥 선생님

플라잉 휠체어 23화

by 두꺼운 손가락

바이올린은 힘들어도 할수록 좋아지는데,






23. 김현옥 선생님



장애라는 것은 겪고 참아내도 유쾌해지지는 않았다. 정상으로 살아 본 적도 없지만, 이 몸으로 몇 년을 더 살아야 하나.


몸을 움직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여의치 않다.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나 같은 사람들에겐 쓸 데 없이 높기만 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요기에서 조기로, 문간까지 가는 것도 힘들고, 용변을 보는 것도 선생님이 요강을 가지고 나가는 생각만 하면 아직도 얼굴이 벌게진다.

맛있는 것을 먹다가도 화장실을 어찌 가야 하나 싶을 땐 변비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도 해봤다.


먹고 치우는 일, 쓸고 닦는 일. 끝도 없는 일상.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점점 더 하기 싫어지고 계속 어렵기만 한 이 집안일들이 늘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때가 아니어도 왜 이렇게 배가 고프고, 화장실은 왜 자꾸 가게 되는지.

나는 별로 움직이지도 않는데 끊임없이 굴러다니는 이 먼지들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옛날에 집에서 지낼 때 어머니와 나를 돌봐주던 누나들이 하는 걸 볼 땐 어렵다, 쉽다, 잘한다, 못한다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 같아 보여서 정말 아무 일이 아닌 줄 알았던 내가 멍청이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 손과 팔은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움직일 때도, 바이올린을 할 때도 손과 팔을 사용했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갈 때도 어깨를 이용해서 팔로 누르고 손으로 방향을 틀고 모든 집안일에도 당연히 손과 팔이 필요했다.


언제까지나 우리 집안일과 지저분한 일들을 김현옥 선생님께만 맡기고 있을 수는 노릇이었다. 어찌어찌해서 엉터리로라도 부엌일이 손에 좀 익었을 때쯤에 김현옥 선생님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쩐지 요 근래 선생님이 심하다 싶게 우리들을 다그치며 부엌일을 가르치신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위해 더럽고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하신 선생님이 결혼을 하신다니 너무 기뻤다.


베데스다가 여기까지 오는 데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지만, 그중에서도 김현옥 선생님의 뒷바라지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빙긋이 웃으시며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미소가 빛났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복을 채 가는지 궁금했다.

남편 될 분에 대해 여차여차 설명을 하시는데, 다른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휠체어를 타는 걷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데 너무 충격을 먹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같이 맘씨 곱고 헌신적이며 아름다운 분은 하늘의 복을 차고 넘치게 받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터였다.

꽃다운 나이를 재활원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장애인들의 모든 더럽고 귀찮은 뒤치다꺼리로 인생을 헌신했는데, 결혼마저 상이용사와 하다니?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와 생활을 들여다보면 아주 예상하지 못할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 때문에 고생했던 것을 키도 크고 좋은 직장을 가진 남자, 걸어 다니는 남자를 만나 사랑받으며 보상받기를 바랐다.


입 밖으로 내서 말해본 적은 없지만 현옥 선생님은 꼭 그런 결혼을 해야 마땅한 것으로 우리끼리 무언의 동의가 맺어졌었다.

우리의 당연한 바람은 선생님의 수줍은 미소와 함께 와장창 깨졌다.

우리 때문에라도 장애인이 지겨울 텐데 왜 하필 장애인이랑 결혼하냐고 물었더니 그저 웃기만 하셨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닐 때 나도 예쁜 여자를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혹여 나를 향해 찌푸리지 않고 살짝 미소를 짓는 아가씨가 있으면 마음 설레기까지 한 날도 있었다. 나 자신은 사지가 멀쩡한 사람과의 로맨스를 꿈꿨으면서 우리 선생님이 그런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니 그저 화가 났다.

그것도 길거리를 오가다 계단 앞에서 낑낑대고 있는 상이용사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돕다가 인연이 닿았다는 것이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우리들을 도우며 사는데, 길거리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장애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였다. 매일 우리 때문에 피곤했을 텐데 그냥 지나쳐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그 고운 마음을 누가 탓하랴.


선생님의 결혼식 날에 우리는 그 어느 연주 때 보다도 멋있게 차려입었다.

식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미니 콘서트처럼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연주밖에 더 있겠나.

하객들이 식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우릴 보고 수군거리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눈빛이 우리를 향했다.


우리는 어느 연주회 때보다 더 공을 들여 연주했다.

찬송가, 클래식 명곡, 유행가 가릴 것 없이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정성을 다해 음악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연주에 맞추어 아름다운 천사가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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