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무한한 사랑

플라잉 휠체어 24화

by 두꺼운 손가락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24. 새로운 길, 무한한 사랑



잘 배워둔다고 배웠건만, 현옥 선생님이 없는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분명 치웠는데 난장판이었고, 분명 빨았는데 얼룩은 그대로고, 내가 한 밥은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었다.

그래도 밥이 맛있어야 연습할 맛이 나는데, 이거 참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집이 돼지우리여도 차인홍은 연탄광으로 들어갔다. 신종호는 오늘도 다락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연습했다.

그거밖에는 아무것도 할 일도 없었고 그거만이 살 길이었다.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연주 의뢰가 들어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약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연습이었다.


어느 날 황연대 선생님이 우리를 찾아왔다. 황연대 선생님은 장애인들에게는 꿈같은 존재다.

나와 같은 소아마비를 앓으셨는데 의사가 되셨다. 소아마비에 걸렸다고 머리까지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게 이 분을 통해 증명되었다. 미국 유학도 하셨고 아주 유명한 의사가 되셔서 장애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분이셨다. 장애인들이 사회에 어우러져 사는 것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고 계시는 분이니 베데스다 콰르텟에 대해 못 들었을 리가 만무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집까지 오셨다.


집 안으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집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셨다.

그래서, 어디서 연습한다고? 밖으로 나가 연탄광을 열어 보고 돌아오셨다.

다락에서 연습한다 했지요? 거기도 보여주세요. 밥을 할 땐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물어보셨다. 식구들은 어디 있는지, 악기를 어떻게 배우게 됐는지, 콰르텟 연주하면서 아쉬운 점이나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시시콜콜한 거까지 물어보셨다.


내가 오늘 찾아온 이유는 다른 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이 더 많은 연주를 하고,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얘기하러 온 거죠. 지난달에 여러분 연주를 보러 갔었어요. 아주 감동적이었고 뭉클해지더군요.

내가 몇 가지 생각해 둔 게 있는데요. 우선 내 제안을 들어보시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충분히 생각하고 대답해주기 바래요.

내 생각엔 베데스다 콰르텟이 더 좋은 연주를 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려면 다 같이 서울로 오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걱정되는 게 많지요.


가장 먼저는 어디서 살 것이냐겠죠. 살 곳과 연습실은 제가 마련해보겠습니다. 돈 걱정은 하지 말아요. 소아마비 협회도 있고 여기저기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다른 여러 가지도 제공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서울?

머릿속이 하얘졌다. 너무 가고 싶었다.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지 않는가. 안 갈 이유가 없다.

그래도 가는 게 맞나? 간사하게도 이럴 때만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게 된다.

하나님. 제가 뭘 선택하는 게 맞겠습니까. 서울에 간다고 한들 뭐가 잘 될까요?

며칠간 우리들은 치열한 대화를 했다.

우리가 확인한 건 두 가지.

가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간다고 해서 무슨 수가 있는 걸까 하는 두려움.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가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우면서도 기대되는 마음으로 황 선생님께 서울로 가겠노라고 연락을 드렸다.

시골 촌놈에게 이게 무슨 일인지.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게 됐을 때보다 더 긴장했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고, 인생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주하려고 할 때마다 새로운 길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 길은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다며 선택은 나의 몫이라고 했다.

나는 끌려가다시피 새로운 길에 발을 내디뎠고, 무엇에 홀린 듯 그 길을 걸어갔다.


길 위에는 언제나 누군가 함께 있었다.


나 혼자라면 절대 갈 수 없는 길이었다는 걸 뒤를 돌아봐서야 깨달았다.


내가 서울로 간다는 소식에 동생들이 나를 찾아왔다. 빙 둘러앉더니 둘째가 슬그머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형님. 이거는. 왜 있잖소. 그. 우리 형제들 공동으로 만든 통장 말이오.”

무슨 뜻인지 벌써 알만했다.

나는 너무 염치가 없을 뿐이다. 나는 퉁명스레 쏘아붙이며 말했다.

“그래. 그 통장이 뭐. 왜.”

“큰 오빠. 우리가 얘기해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 통장은 이때를 위해 우리가 모은 게 아니었나 싶어.”

“…….”

나는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아니. 뭐. 우리가 언제고 중요할 때 쓰자고 다 같이 모은 돈 아니요. 그게 지금인 게지.”


장남인 나는 동생들에게 할 말이 없다.

다른 집 장남들은 대학도 포기하고 취직해서 동생들에게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려고 난리들이라는데, 나는 태어나 지금까지 늘 그 반대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내 걱정은 하지 마. 오랫동안 함께 모은 돈인데 정말로 중요한 순간에 써야지. 이렇게 아무렇게나 막 통장을 깨면 되냐. 마음은 알겠어. 그런데 돈은 도로 가져가. 지금까지 굶은 적 없어.”

“거. 그러지 말고 이걸로 악기나 좀 바꾸쇼. 사람들도 그러고 여기저기 물어보니 거 형님 그 악기로 연주자랍시고 하는 거도 대단한 거라고 합디다. 우리가 뭐 악기를 어디서 어떻게 사는 건지를 알아야 악기를 사 오지.”

“…….”

“그래 봐야. 우리한테야 힘들 게 모은 돈이지 좋은 거 살 만큼이나 될라나 모르겠소. 그래도 형이 서울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 통해 사면 속지 않고 살 수 있겠지 싶어서.”


너무 놀라 숨이 안 쉬어졌다. 악기 얘기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식구들에겐 아무것도 해 준 거도 없고 늘 죄인 같은 존재인데, 나는 내 사는 거만 바빠서 식구들을 위해 생각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동생들은 함께 피같이 모은 돈을 선뜻 내게 준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염치없게 나는 이 돈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다. 정말로 악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좀 더 좋은 악기가 필요하다고 말해본 적 없었는데, 동생들은 알고 있었다.

내 연주는 빠지지 않고 보러 왔지만, 사는 게 바빠서 달랑 음악회만 보고 갔지 음악회 전후에 만나 밥을 같이 먹거나 사진을 찍는 것도 하지 못했는데, 동생들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고맙다. 늘 미안하고. 이걸로 올라가서 악기 살게. 진짜 고맙다.”

이전 24화김현옥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