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주

플라잉 휠체어 21화

by 두꺼운 손가락

베데스다의 첫 연주회는





21화 첫 연주



가톨릭 문화회관에서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랬던 연주인데 한다고 하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대를 상상해보았다.


휠체어를 밀고 무대에 나온다.

옆에는 친구 한 놈이 악기를 들고 같이 나와 내게 악기를 건네주고 들어간다.

인사를 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가 끝나고 인사를 한다.

친구들이 다시 무대로 나와 내 악기를 받아들고, 나는 휠체어를 밀며 무대 뒤로 들어간다.

연주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늘 누군가가 필요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연주를 한다고 하면 과연 누가 보러 와줄까.

그게 무슨 감동이 될까. 연주회라고 하면, 멋있는 연미복을 차려입은 연주자들이 무대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간다.

눈이 부신 조명 아래로 연미복을 입고 걸어 나가는 모습 자체가 관객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상상을 하면 할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끝에서 끝을 왔다 갔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연습을 시작하고 내가 무대에 있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졸아들었다.

멤버들과 연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연주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나면 다시 힘이 생겨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몇 시간 후엔 다시 침울해져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하고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혹시나 이런 내 마음을 들킬 새라 마음을 다잡고 연습에 집중했다.


콰르텟 연습하는 시간은 내게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세컨 바이올린을 맡았는데, 내 소리의 색깔은 화려하게 빛나는 멜로디보다는 차분하고 묵직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받쳐주는 역할에 더 잘 어울렸다.

때로는 퍼스트 바이올린의 한 옥타브 아래에서 낮은 음으로 함께 멜로디를 연주하거나, 비올라보다 몇 음 위에서 같은 리듬으로 곡의 분위기와 색깔을 바꾸는 키가 되었을 때 음악 한 가운데에 있는 그 자체가 참 기분이 좋았다.


우리 넷은 성격이 다 달랐다. 그냥 친구로만 있었으면 의절했을지 모를 정도로 다들 성격이 강한데, 음악을 하면서 진짜 친구가 되었다. 참 신기한 것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음악에 대한 생각을 서로 얘기하고 맞춰가는 작업을 하고나니 우리의 음악이 점점 들어줄만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연주 날이 되었다.

점심 즈음에 많은 친구들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다들 우리 연주회를 손꼽아 기다려 주었다. 악기와 옷가방, 그밖에 연주에 필요한 모든 짐들을 들어주고, 한 사람씩 휠체어를 밀어주기 위해 온 것이다.


이날 이후에도 친구들은 모든 연주에 도우미를 자청하고 와주었다. 아주 먼 곳은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여러 대 불러야 했지만, 걷고 뛰어서 40~50분 안쪽으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의 연주장이라면 친구들이 휠체어를 밀어서 갔다. 우리의 연주 날엔 언제나 많은 친구들이 와주었었다. 만약 내가 저 친구들이었다면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열성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도왔을까를 생각하니 부끄럽고 창피했다.


친구들과 우리 네 명까지 20대 남자들 열 명 가량이 조용히 움직일 리가 없다.

휠체어를 밖으로 끌어내고, 4명의 악기에 연미복 가방까지 짐이 너무 많다.

빨리 나와라, 기다려라, 다 챙겼냐, 다 나왔냐, 확인해라, 조용해라, 너나 조용해라, 시끄럽다, 이 새끼야, 저 새끼야, 낄낄낄. 뭐가 그리 신났는지.

동네 사람들은 아마도 쟤네들은 다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 정신머리가 이상하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휠체어부대가 길을 나섰다.

도로가 잘 닦여있는 곳이 많지 않아 포장 된 곳에서 빨리 달려줘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평평한 곳이다 싶으면 친구들이 외친다.

“달려!” 한 마디 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휠체어를 밀었다. 달리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시원하면서도 자유로운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가끔 속도제어가 안 되거나, 미처 보지 못한 작은 웅덩이나 조그만 돌에 걸리면 휠체어와 함께 길바닥에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여기저기 까지고 피가 나도 그저 웃었다.


이 새끼야 제대로 밀어. 나는 잘 밀었거든? 내가 눈이 니 앞으로 달린 거도 아니고 그 앞에 돌을 어떻게 보냐. 니가 말해줬어야지. 야 이 새끼야. 그렇게 빨리 달리면 언제 말하냐. 말하려는데 내 몸이 공중에 있더라. 내 덕분에 공중을 날아본 느낌이 어떠냐. 됐어 이 새끼야. 빨리 일으켜.

동네 떠나라가 웃으며 나를 일으킬 생각은 안하고 돌아가며 휠체어 민 놈을 한 대씩 때리고 있다.

야. 저 새끼 빨리 일으켜. 휠체어는 안 망가졌냐? 빵꾸 난 건 아니지? 지난번처럼 나사가 뭉그러지면 큰일이야. 고치는 데 시간 오래 걸린다고. 내가 무대까지 업어서 나갈 꺼야. 저 새끼 생각보다 디게 무거워. 야 이 새끼야. 나 아까 화장실 갔다 와서 어느 때보다도 가볍거든?


시간이 되었다.

무대 문이 열렸고 문 안쪽 무대 정 가운데, 가장 밝은 곳에 네 개의 보면대가 보인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한테 준비됐냐고 묻지도 않고 친구들이 휠체어를 밀어서 무대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다 놨다.

객석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왔을까?


첫 곡으로 모차르트의 <Eine kleine nacht musik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직>을 연주했다. 이 곡은 네 명이 함께 우렁차고도 명쾌한 울림이 있는 화음으로 시작된다.


베데스다 콰르텟의 시작이었다.

연주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안정되고 함께 연주하는 동료의 얼굴도 더 평안해져 가는 듯 보였다. 관객들의 기대감과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무대로 전달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집중을 해나갈 수 있었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사람들의 박수가 더 커져갔다.


첫 연주는 대성공이었다.

다 끝나고 집에 와서 누웠는데, 오늘 하루가 좌악 생각나면서 도대체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침부터의 모든 일들이 그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이 느껴졌다. 이미 끝났는데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분이 좋았다.

다음 연주 때는 무슨 곡을 할까? 이런 곡을 해봐야지, 저런 곡을 해봐야지. 그러려면 실력이 더 좋아져야 하는데. 아.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빨리 일어나서 연습이 하고 싶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연주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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