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가게 되었다.
2. 국민학교를 가다
집에서만 지내고 식구들에게 환영만 받던 나로서는 학교에 간다는 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진실은 학교에 가서 접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나 홀로 세상을 맞이하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내가 느껴본 적 없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무서워하는 건지 째려보는 건지 피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동자들. 선뜻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화들짝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곱지 않은 말을 툭 내뱉으면 거기에 한두 명씩 거들었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겪어 본 적 없는 상황에 내 신경은 항상 날이 서있었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나를 내가 아닌 처음 보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특히 학년 초의 교실은 위태위태했다. 새 학년이 되면 느끼고 싶지 않은 그 시선이 다시 시작된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나를 도와줄 법도 하건만, 그 친구마저 1년 전 그 눈빛으로 다시 돌아갔다.
부모님은 나의 등하교와 및 모든 필요들을 책임지고 돌봐줄 누나를 고용하셨다. 누나의 일과는 매우 벅찼다.
아침에 일어나 나의 등교 준비를 도와주고 나를 업어서 학교까지 걷고 나를 교실에 앉혀 놓고 다시 집에 가서 내 점심 도시락을 싸왔다.
내가 등교를 하고 나면 어머니는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혹시나 당신 없는 곳에서 내가 무시당할까봐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셨다.
밥을 굶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으스댈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따끈한 흰쌀밥과 국, 계란말이, 미제 소시지 같은 비싸디 비싼 반찬을 먹는 부잣집 장남이었다.
친구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교실 밖을 흘끗흘끗 쳐다봤다. 아이들의 시선 끝에는 내 도시락을 가져온 누나가 서 있다. 저 보자기에 오늘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친구들의 눈빛은 언제나 초롱초롱했다.
그 시절 내 도시락은 우리 반 최고의 핫이슈였고, 동시에 점심시간만큼은 내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점심 종이 울리고 누나가 교실로 들어와 내 책상 위에 보자기를 펼치면, 오늘은 무슨 반찬이냐며 달려드는 아이, 궁금은 하지만 가까이는 오지 못하는 아이, 오늘은 달걀 한 점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하고 나를 보며 웃는 아이.
어머니의 도시락은 내게 친구를 만들어 주었고 사람대접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법 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