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휠체어에서 살고 있다.
1화 어린 시절
당신은 1950년대의 한국을 알고 있는가?
내가 태어난 1956년의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다.
산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보다 바닥이 드러난 곳이 더 많았고, 먹는 끼니보다 굶는 끼니가 더 많았고 너무 없이 살아서 무엇이 없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신마저도 한국이란 나라는 모르시는 것만 같은 그런 시대.
그래도 동네마다 쌀밥을 먹는 집이 한 두 집씩은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선 유일하게 우리 집만 그랬다.
유능한 사업가셨던 할아버지 덕에 12명의 대식구가 굶기는커녕 도시락까지 꼬박꼬박 싸갈 정도로 넉넉했다.
나는 부족함 없이 넘쳐나는 집안에서 장남이자 종손으로 태어났다.
당시는 첫 아이가 아들이면 집안이 받을 복이 그 장남에게서만 나올 것처럼 온 동네의 축하와 축복을 받았다.
내가 조금만 아프면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고, 내가 똥만 잘 싸도 웃음이 담벼락을 넘어온 동네를 적셨다.
나는 돌이 조금 지나 아직 제대로 걷기 전에 열병을 앓았는데, 그리고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걸어 본 적도 없었는데 걷기도 전에 마비가 왔다.
당시에 소아마비는 매우 흔한 병이었다. 흔하지만, 문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 뒤로 3명의 동생을 더 낳으셨고, 동생들을 키우며 크디큰 집의 살림을 건사하시느라 엉덩이 한 번 땅에 붙이지 못하고 사셨다. 게다가 장손은 걷지도 못하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가슴에 돌덩이가 있으셨을 게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안고 내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셨다. 누가 어디를 갔더니 좋아졌다더라, 나았다더라는 소문만 들리면 거기가 어디든 어르신들은 나를 들쳐 업고 가셨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바람처럼 지나는 소문에도 희망을 걸었고,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 집 식구들은 아무도 좌절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생겼는지 무한한 사랑은 늘 내게 집중되었다.
치료에 실패해도 서로를 다독였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재료들이 가득한 약을 달이는 냄새가 집 안을 가득 매웠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는 게 내 탓인가도 싶어 쓰고 먹기 싫어도 꾹 참고 약을 들이켰다.
침, 뜸, 귀하다는 음식은 죄다 구해서 먹이고 온 몸을 주무르고 한겨울에 내 방만큼은 절절 끓도록 불을 지피셨다. 그런 지극정성 때문이었는지 나는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게 된 건 약이나 치료가 아니라 결국 사랑이지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왼팔이 절반 정도는 올릴 수 있을 만큼이 되었고, 이어서 왼손과 오른팔, 오른손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왼쪽 어깨와 두 다리는 그냥 그 상태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면서 어른들은 삶에 더욱 열심을 내셨다. 아버지는 더욱 열심히 사업에 매진하셨고, 어머니는 밥상 하나 흐트러지면 혹시 복이 달아날까 봐 집안일을 무서우리만치 완벽하게 해내셨다.
어떤 이유에서였건 식구들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안의 모든 남자들을 거느리고 목욕탕에 가셨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나를 가장 귀한 보물인양 대하셨다.
집안의 어르신들은 나와 동시대를 살던 소아마비 부모님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나를 있는 그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