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플라잉 휠체어 5화

by 두꺼운 손가락

나는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5. 공부



읽고 쓸 줄 알고, 덧셈, 뺄셈 할 줄 아는 데 뭐가 더 필요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학교에서 성적대로 자리를 정했다. 요즘 그랬다가는 비인격, 인권침해, 등등 뉴스에 날 일이겠지만 그때는 이런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시대가 그랬다.

모두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내 자리는 칠판에서 멀고 멀었고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했다. 꼴찌 하는 놈이라도 다리는 멀쩡하니 쉬는 시간만큼은 그 등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은 공부뿐이었다.


맨날 놀기만 하던 장남이 공부를 한다고 하니 집안에서는 조용히 해라, 모르는 거 물어봐라. 공부 잘하려면 좋은 거를 먹어야 한다. 누가 보면 사법고시라도 준비하는 줄 알았겠다.

공부를 안 하던 놈이 공부를 하니까 성적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1등은 아니었어도 선생님의 시야에 들어오는 자리에는 앉게 되었다.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니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은 당연히 달라졌다.


공부를 해보니 공부하는 게 그리 나쁜 게 아니었다.

무엇인가 하나를 더 알아간다는 게 꽤 기분이 괜찮았다.

친구들이 더러 내게 무엇인가를 물으러 왔다.

누군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게 기분을 참 묘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누가 물어볼 때 답을 못하게 될까 봐 더 공부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6학년이 되니 중학교 입시가 시작되었다.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누구나 목표는 대전 중학교였다. 아직 국민학생 밖에 안됐는데도 12시까지 공부하네. 과외를 하네. 소문이 많았다. 그까짓 대전 중학교. 나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치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점 만점에서 대전 중학교는 한 개나 두 개만 틀려야 합격이 가능한데,

10점 배점인 체력장을 치를 수 없는 나는 0점 처리를 받으니까, 필기에서 만점을 받아도 대전 중학교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나 같은 장애인은 대전 중학교, 대전 고등학교 같은 엘리트 학교는 아예 갈 수 없다는 말인가?


나는 국민학교 6년 동안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물론 이건 내가 성실해서가 아니다.

감기에 걸려도 학교 가기 싫어도 학교에 올 수밖에 없었다.

식모 누나가 있었기에 결석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내 개근상은 내가 아니라 누나가 받는 게 옳았다.


1등을 해 본 적은 없어도 옆 친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뜀박질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전 중학교 합격이 따 논 당상도 아닌데,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내 것을 뺏긴 기분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뭐 별 수 있나. 필기고사를 다 맞아도 90점밖에 되지 않을 내 성적이 억울하다고 항변할 곳이 없었다. 아무도 그걸 억울한 일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내 장애는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데 왜 이런 일들이 당연한 것이란 말인가.


어느 날 누나 대신 어머니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

“화가 많이 나냐? 우리 장남.”

나를 업고 집에 가면서 어머니가 나지막이 물으셨다.


“……”

“엄마가 많이 미안하다.”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우리 아들이 걸을 수만 있었으면 누구보다도 잘 뛰었을 텐데. 어쩌겠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다는 말도 안 괜찮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우리 어머니가 언제 이렇게 얇고 앙상해지셨는가.

내가 너무 커져버린 모양이다.

어머니를 덜 힘들게 하려면 덜 먹어야 하나.


흙바닥에 쩍쩍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와 덜커덕덜커덕 내 엉덩이 밑에서 움직이는 책가방 손잡이 소리만 점점 커져 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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