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중학교를 가면 되는 거 아니겠나.
6. 좌절된 중학교
세상에 중학교가 대전 중학교 하나뿐인가?
그래도 입시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를 가는 게 맞는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할아버지의 사업이었다.
작년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점점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못 들어오시는 날이 생겼고, 어머니는 통 잠을 못 주무셨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다들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만 했다. 누나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내가 남들과 비슷한 도시락 반찬을 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을 다 내보내더니 세간살이의 절반 이상을 내다 팔고, 조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갔다.
점점 더 명확해졌다. 대전 중학교가 아니더라도,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중학교에 반드시 가야 했다.
중학교 입시 시험도 끝났는데 아무도 내게 중학교에 대한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뭔가를 물어볼라치면 어머니는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을 흐리셨고, 저녁때면 작은 아버지들이 급하게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돌아가셨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친척들이 다녀가시고, 아버지도 일찍 들어오셨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어른들이 다들 서로 눈치를 보고 계셨다.
“강일아.”
고개를 들어보니 어른들이 다들 몸을 반쯤 돌려 앉으셨다.
말을 꺼내신 어머니조차도 나를 보고 있지 않으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도무지 무슨 일로 다들 이런 분위기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중학교에 갈 수 없는 거였다.
나는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도 아니고 성적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어느 학교에서도 나를 받아 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다른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헤친다는 것이다.
국민학교에서는 아무 지장 없었던 내 존재가 왜 갑자기 중학교에서는 문제가 된다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내 납득 여부가 무슨 상관이겠나.
걸을 수 있는 게 그렇게나 대단한 권력이었다.
체력장을 0점 받고도 너끈히 합격할 수 있는 성적표는 아무 소용없었다.
중학교를 갈 수 없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저 집에만 있으면 되나?
집에 있기만 하면 되는데 뭣 하러 글을 배우고 수학을 배웠던 걸까?
어머니는 대전뿐 아니라 시외버스 타고 가는 곳까지 나를 받아주겠다는 학교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일념 하나로 아픈 허리를 굽실굽실하며 입학을 구걸하고 다니셨다.
우리 반 꼴찌도 갈 수 있는 똥통 중학교에서조차 나를 받아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세상은 참 거지 같다.
“니 작은 아버지들이 여기저기 학교를 알아 왔는데….”
“……”
“그게…. 재활학교라는 데가 있는데 말이지.”
그동안 작은 아버지들이 왔다 갔다 했던 게 다 나 때문이었다.
나 하나 학교에 보내보자고 온 집안 식구들이 이렇게 애를 쓰고 있었다.
안 가르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다들 백방으로 알아보신 거였다.
나를 절대로 받아 줄 수 없다는 학교들, 어떻게든 가르쳐야 한다는 식구들.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 아버지가 말씀을 꺼내셨다.
“거기가 뭐 좀 그런 점들도 있지만.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 준다고 하니. 지금 우리한테는 딱 맞는 학교다.”
“먹고 잔.. 다구요? 학교에서 살아요?”
“졸업장을 주는 학교가 아니라는 게 마음에 좀 걸리는데. 그건 뭐 나중에 검정고시를 치르면 되니까. 괜찮을 거야. 어차피 거기도 학교고.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 다 가르친데.”
괜찮다는 말은 안 괜찮다는 말보다 더 안 괜찮게 들렸다.
저 말은 나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 마음을 다지는 말이었다.
중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싫었지만, 모든 식구들이 나를 위해 이렇게 애를 써놓고도 내 앞에서 죄인처럼 말씀하고 계시는 게 더 싫었다.
재활원. 나같이 걸어 다니지 못하는 애들, 팔이 없는 애들이 모여서 먹고 자고 배우는 곳이란다.
더 큰 문제는 거기는 교회에서 하는 곳이란다. 나는 교회를 가 본 일이 없다.
부모님은 불자셨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 늘 부처님께 기도했다.
장애가 있다는 건 당신들이 믿었던 신마저 별 수 없는 존재로 만들기도 했다.
까짓것 가보자. 별 수 있나. 나를 받아주는 곳이 거기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