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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았지

주변에서 배우는 삶

by 유지경성

나는 어릴 적부터 불운하다고 생각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대신 주로 할머니, 이모, 그리고 그때그때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길러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채 자랐고, 불안정한 모습이 많았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현재의 평온한 모습과 정반대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나는 매우 산만하고 집중을 하지 못해 자주 교탁 옆 문제아 책상에 앉아서 수업을 듣곤 했다. 학급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항상 불안해했으며, 그래서 집에선 게임을 하며 나만의 세계에 몰두했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이 공간이 편했고, 내가 편하게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나만의 세계였다.


그러던 초등학교 4~5학년 무렵, 문득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 친한 친구가 없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세상과 단절되어 있고, 사람들에게 있어 나는 그저 조용히 게임하는 아이이거나 부딪히면 감정을 폭발시키는 아이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내가 혼자라는 사실과 소통이 어려운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런 나를 지켜준 몇몇 친구들이 있었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신 선생님도 계셨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커다란 행운을 만났다. 중학교 첫날 배치고사를 치른 후 반 배정을 받아 우연히 교실 앞쪽에 앉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배정받은 자리였을 뿐이었지만, 그 자리 덕분에 나는 나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3명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이 친구들은 반에서 1, 2, 3등을 다투는 아이들이었고, 나와는 달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교과서 한 번 펴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런 친구들은 낯설고 동시에 흥미로웠다.


그들은 단순히 성적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한 친구는 사교적이고 리더십이 뛰어나 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다른 친구는 조용하고 따뜻한 성격으로, 묵묵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꼼꼼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모든 일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임하는 성격을 가졌다. 이들은 모두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졌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나보다 더 성실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의 비교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공부에 무관심했던 나로서는 큰 변화였지만,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이전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다. 학급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내가 소통하고 협력하려고 노력했고,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내가 그들처럼 목표를 세우고 노력의 수준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고, 여러 번 실패도 맛보았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제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고, 오히려 친구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나의 이런 변화는 결국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저 게임 속에 빠져 있는 아이가 아니라 친구들과 대등하게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친구들을 만난 것은 내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이들은 나에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가르쳐 주었고, 나는 덕분에 변화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상과 달리 대학 생활이 나에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대학이었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랐고,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을 그저 흐르듯 지나게 되었고, 그렇게 첫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운이 좋게도 훌륭한 리더와 팀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첫 직장에서의 경험은 큰 자극이 되었다.


그들은 명문 대학 출신일 뿐 아니라,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단순히 좋은 학교를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실력과 노력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걸 깨달으며 나 역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그들처럼 실력을 쌓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늦게까지 남아 작업하며 배워 나갔다. 내 앞에 놓인 도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들은 돈이나 외부의 보상이 아닌, 자신의 커리어와 목표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일을 ‘사랑’하며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무게를 느꼈다. 덕분에 나도 내가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일을 대하는 자세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고, 나는 나의 일애 대해서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후 한 번의 이직을 거쳐,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여전히 내 주변에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동료들이 있다. 나는 배워야 할 점이 아직 많고, 나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이 상황을 감사하게 여긴다. 지금도 나는 운이 좋다. 그리고 오늘도 운이 좋은 날이다. 주변에서 배울 수 있는 귀한 사람들이 나의 삶에 존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 Photos taken in Carcassonn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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