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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사고력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

by 유지경성

최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주주들과 함께 워렌 버핏과 그렉 아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른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고, 행사장 안에서는 빈자리를 찾아다니며 곳곳에 앉은 사람들이 열띤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나는 조금 의외의 풍경들을 함께 목격했다. 누군가는 강연 중 잠을 자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인증 사진을 찍고는 행사장을 벗어나 쇼핑몰로 향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총회의 내용을 가볍게 스케치하며,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 자리에 왔고, 같은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서 얻어가려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버핏의 한 마디를 마음에 깊이 새기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왔을 테고, 또 다른 이는 단지 오마하라는 장소와 ‘버크셔 주총’이라는 이름이 주는 특별한 경험을 기록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다양성이야말로 이 자리의 의미일 수도 있다. 다만 그 가운데서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고, 어떤 태도로 이 시간을 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주주총회라는 행사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어떤 자리에 서 있을 때, 그 자리가 지닌 '본질'보다는 그 자리에 있다는 '형식'에 안주하곤 한다. 깊은 이해보다는 빠른 반응, 묵직한 질문보다는 소비될 말들을 앞세우는 모습은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콘텐츠화되고 소비되는 시대에는 특히 그러하다. 유튜버나 기자, SNS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느라 분주하지만, 때때로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과연 본질을 향하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되묻기 어려울 것이다. 그건 단순히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현시대가 요구하는 태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어딜 가든 사진이 빠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보기보다, 사진 속에 담는 것이 먼저였다. 물론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욕구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진이 여행의 주인이 되어버렸고, 정작 그 순간을 느끼는 여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한번 그냥 주변을 느껴봐.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겨보자.” 여유롭게 산책하는 외국 노부부들은 꼭 필요할 때만 사진을 찍고, 그 외의 시간은 그저 그 자리에 머물며 자연을 누리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부모님은 사진을 꼭 필요한 순간에만 남기셨고, 그 여행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처럼 본질에 집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행동을 멈추거나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이 아니다. 같은 현상, 같은 사물을 놓고도 얼마나 깊이 있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같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누구는 표면만 훑고 지나가고, 누구는 그 이면을 질문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누구는 줄거리만 기억하고, 누구는 그 문장 하나에서 삶의 방향을 찾는다. 본질에 다가간다는 것은 ‘더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더 깊게 생각하는 것이다.


진지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지 열심히 하거나 차분해 보이는 외형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선과 질문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정말로 관심을 가지는 주제가 있다면, 그 주제를 두고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고 다시 연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을 몇 권 더 읽는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라, 그 주제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물론 누구나 모든 일에 무겁고 진지하게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어떤 일에 ‘진지하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고민과 생각의 깊이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사고가 생기고, 그 사고는 결국 세상을 해석하는 자신의 언어가 된다.


이런 태도는 내가 하는 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M&A 업무를 하다 보면 많은 기업들이 타사의 사례와 트렌드를 따라가려 한다. 어떤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출했고, 어떤 구조를 썼으며,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냈는지를 철저히 분석하고 벤치마킹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략은 때때로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찰리 멍거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회사는 투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실사만 계속한다.” 실사란 대상 회사를 재무, 세무, 법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인데, 이들은 끊임없이 자문사에 자료를 요청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한다. 멍거는 이렇게 말한다. “70~80%의 정보면 충분하다. 100%를 채우려는 사람은 결국 결정을 하지 못한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세상에 완벽한 정보는 없다.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충분한 정보’가 아니라 ‘자기 생각’으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결국 사고력이 없으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늘 다른 누군가의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그 의존이 반복되면 결국 삶도, 일도 수동적으로 흘러가고 만다. 많은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의 생각에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지만, 정작 자기 생각에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내가 누구보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내 삶인데, 그 삶에 대해 나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끼고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 결정을 내렸는지를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은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본질은 언제나, 조용한 생각과 내면의 질문 속에 있다.


Omaha, Nebra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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