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시기가 오는가, 안정된 내가 되는가

보이지 않는 감시자 (The invisible watcher)

by 유지경성

연초부터 바쁘게 달려온 일정들이 이제야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나는 늘 일정한 ‘마음의 채무’를 지닌 채 자유를 누려왔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능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모든 사적인 여유가 억눌렸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유로운 삶 자체가 죄책감이 되었다. 아주 억압된 삶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삶도 아니었다.


취업 이후 나는 이유 없이 열심히 살았다. 돌아보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나는 일에서 재미를 느꼈고, 일을 잘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몰입했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성장의 감각이 좋았다. 반대로, 게으른 마음이 들거나 어떤 일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그런 나 자신이 싫어져 더욱 나를 채찍질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무엇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 마치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처럼, 내 안에도 ‘보이지 않는 감시자(The invisible watcher)’가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 없이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편안한 삶조차 경계하게 만드는 무언가. 과거에는 그 감시자의 시선 속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삶의 모습이 정해져 있었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늘 마음속엔 스트레스가 남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감시자의 시선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스스로에게 ‘Let it be’라는 말을 조금씩 허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자리에 있든 여전히 나이고, 내 부모와 친구들은 변함없이 나를 아껴준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스스로가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예전에는 늘 나의 마음속 이상향과 현재의 나를 비교했다. 그 이상에 닿지 못하면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아무리 주변에서 위로를 해도 내 기준에 못 미치면 스스로 괴로워했다. ‘이것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야’, ‘저 지점에만 도달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라는 생각을 반복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지점은 오지 않았다.


지금은 누군가가 정한 ‘합격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내가 만족하고, 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물론 시험이나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그건 분명히 도달해야 할 지점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목표를 단지 ‘갖고 있지 않다’기보다, 그런 유형의 목표에 별다른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하며,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 일이 어느 회사인지, 연봉이 얼마인지, 타이틀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외적 조건이 내 행복을 보장하지 않음을 이제는 더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삶의 의욕이 없는 사람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부단히 노력하고자 한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 전문적 능력, 사람과의 관계 맺기 등 여러 측면에서 준비가 필요하다. 다만 특정한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큰 방향성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특정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예전보다 덜 흔들리고, 슬럼프에 덜 빠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과거의 나는 A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걸 걸었고, 그게 무너졌을 때는 삶의 무료함을 느끼는 것처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 수능을 못 본 고등학교 3학년의 마음처럼 말이다. 지금의 나는 ‘A가 안 되면 B도 괜찮지’라는 마음으로 산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보려 한다.


올여름, 나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부터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결코 가벼운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회사에서 충분히 겪어보고, 노력해 본 끝에 지금의 방향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봤지만 내가 바라는 인생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기에 더는 미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나아가려고 한다. 이 결정은 ‘떠나면 더 나아질 것이다’는 낙관이 아니라, ‘이 방향성은 아닌 것 같다’는 명확한 감각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이 배가 내 배가 아니라면, 다음 목적지가 불확실하더라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목적지를 모르는 다른 배를 타기로 했다. 도착지가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더 나아진 삶일지, 아닌 삶일지조차 중요하지 않다. 그 또한 ‘내 삶’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늘 불안했다. 대학 입시, 취업, 커리어의 미래. 늘 결과를 걱정하며 살았다. 지금은 돈도, 커리어의 보장도 없지만 마음은 오히려 여유롭다. 심지어 가끔은, 모든 걸 내려두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살진 않겠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 곧 유학이 시작된다. 함께 유학 가는 동기들은 명확한 커리어 목표를 품고 전력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안감을 가지고 뛰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되, 이번 2년의 유학은 내 인생에서 처음 주어지는 ‘진짜 내 시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 시간을 졸업 후의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다운 시간으로 살아보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목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안정된 시기가 오는가?


지금에서는, 다음의 대답이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이다.


지금이 안정된 시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어떤 시기에서도 안정될 수 있는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For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부산 해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