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밤, 운전하며 떠오른 생각들

운전하며 느낀 내 삶의 방향성

by 유지경성

바쁜 출장이 끝나고, 비교적 여유로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2016년 이후 이렇게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여유를 느껴보는 건 오랜만이다. 그래서인지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국에서 운전을 하며 들었던 생각들을 써보려 한다. 도로 위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들이,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겹쳐지게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부를 보지만, 나는 내부를 바라본다.

사람들은 자동차의 외형을 먼저 본다. 어떤 차를 타는지, 브랜드가 뭔지, 얼마나 멋진지에 시선이 간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그 차의 주행 성능, 안정감, 승차감, 내부의 편안함이다. 어떤 차는 외적으로 멋져 보이지만 승차감은 형편없고, 어떤 차는 겉은 평범해도 오히려 만족스럽다. 어떤 차를 선택하느냐는 철저히 나의 몫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각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겉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서 느끼는 실제 감각이 더 중요하다.


외부 환경은 감안하되, 탓하진 않는다.

운전을 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어쩔 수 없는 사건사고를 겪을 수 있다. 폭우나 폭설처럼 외부 조건이 나쁠 땐, 평소처럼 운전해도 위험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날씨를 탓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나는 눈이 오는 날엔 차를 끌지 않는다. 번거롭지만, 사고는 피할 수 있다. 인생에서도 외부 환경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환경에 맞는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해도 때로는 난폭 운전자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그냥 지나가면서 이렇게 생각하자. 이 또한 결국은 지나간다. 굳이 멈추거나 부딪히지 않아도 된다.


운전자는 언제나 한 사람이다.

살다 보면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부모님의 조언도 있고, 좋은 내비게이션처럼 나침반이 되어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운전대를 잡는 건 나다.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해야 한다.


앞차가 똥차인 것보다 스포츠카인 것이 낫다.

1차선 도로에서 앞차가 느리게 가면, 나는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차가 아무리 좋아도 속도가 막히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나보다 더 멀리 보고,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추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속도를 낼 수 있다. 앞차가 나를 막고 있다면, 내 속도는 결국 그 사람의 속도만큼 제한된다. 내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럴 땐 중간에라도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떤 차인지, 어떤 사람인지 보일 수 있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변이 안 좋은 것보다 주변인들이 똑똑하고, 행복한 것이 100배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거나 배 아파한다는 생각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주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목적지는 같아도, 가는 길은 다양하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출발하면, 길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도로 상황에 따라 우회하거나 다른 경로를 택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그냥 내비게이션이 싫어서 감대로 가고 싶을 때도 있다. 또 어떤 날은 생각 없이 지시를 따르고 싶기도 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인간이라 그런 것 같다. 중요한 건, 어떤 길이든 결국 그 길이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 돌아가고, 때로는 시간을 낭비해도 그 또한 하나의 과정이다. 결국 도착할 수 있다면, 모든 길에는 의미가 있다.


신호를 유의하자.

주행 중 노란불이 켜지면, 더 빨리 지나치기보다는 멈추는 게 낫다. 급하게 가다 보면 사고가 난다. 빠르게 가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더 큰 지연을 만든다. 1~2분을 아끼려다 한두 달을 잃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천천히 살펴보고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앞차만 보지 말고, 신호도 보고, 교통 흐름도 확인해야 급정거할 일이 없다. 삶도 그렇다. 하루하루를 넘기기보다는, 조금 더 긴 시계열로 바라보면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때로는 돌아갈 수 없는 험한 길들도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엔 가파르고 굽은 오르막이 있다.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런 길은 아무리 싫어도 버티고 올라가야 한다. 인생도 같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높고 어렵다면, 결국 감내해야 할 길이 있다. 돌고 돌아도 결국 마주치는 고비가 있다면,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래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차의 동승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멀리 갈수록, 옆자리에 누가 타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동승자와의 케미가 맞지 않으면 한 시간도 힘들다. 반대로 잘 맞는 사람과 함께라면 험한 길도 가볼 만하다고 느껴진다.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그 여정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다.


세차는 하는 편이 좋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내 몸도 마찬가지다. 잘 관리하고 건강하게 유지해야 정서도, 관계도 건강할 수 있다.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너무 많은 짐은 연비를 떨어뜨린다.

트렁크에 짐을 너무 많이 실으면 차가 무거워지고 연비가 떨어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걱정을 담고 다니면, 오래가지 못한다. 여정 중에 새로운 짐을 실으려면 어느 정도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한다. 고민은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무겁기만 하다. 가볍게 살아야 오래간다.


오랜 시간을 달려도 나아가지 않는 구간이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그런 길이 있다. 국도나 비포장도로처럼, 분명 열심히 달렸는데도 지도상으로는 얼마 가지 못한 길. 또, 교통체증이 심한 구간에선 두 시간 가까이 도로 위에 있었지만 실제로 이동한 거리는 고작 몇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한산한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단 10분, 20분만에도 예상보다 훨씬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는 일도 있다.


인생에도 어떤 시기는 열심히 살아도 전혀 나아가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노력은 계속되는데 결과는 보이지 않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 정체된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일이다. 그저 엉켜 있는 길을 지나고 있을 뿐, 언젠가 다시 뻥 뚫린 고속도로 같은 구간을 만나게 된다. 그땐, 지금까지 쌓아둔 시간들이 밀린 거리만큼을 한꺼번에 보상해주듯 속도가 붙는다. 그래서 나는 느리게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자체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은 다 다르며, 속도는 바뀌고, 결국은 앞으로 간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길을 운전하며 마음도 잠시 느슨해졌다. 별생각 없이 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바쁠 땐 지나쳤던 것들이 오늘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