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간 어딘가에서
어떤 것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와의 교집합이 생기는 순간은 대개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그 교집합은 새로운 업무일 수도 있고, 낯선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때로는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번거로움을 안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나 언어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어려운 업무를 처음 맡았을 때 ‘내가 할 수 있을까?’, ‘이 일을 왜 해야 하지?’,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습관, 의도, 태도가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이 묻고, 더 깊이 들여다보며,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두려움이다. 이 불편함과 두려움은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가진 의지가 이 두려움을 넘을 수 있을지, 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의지의 크기는 다르지만, 확고한 의지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불편함과 두려움은 조금씩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전환된다고 믿는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하진 않겠지만, 많은 상황에서는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지점이 생긴다.
익숙함은 두려움과 불편함의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다 보면 감각이 무뎌진다. ‘이건 이렇게 하면 돼. 지난번에도 이랬잖아. 아마 별일 없을 거야.‘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동시에 나태함도 함께 찾아온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익숙함은 예측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웃는지, 화를 내는지, 어떤 말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면 관계는 한결 편안해진다. 나 역시 상대에게 그렇게 읽히게 된다. 이 교집합은 서로에게 안락함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편안함이 안주와 나태함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두려움과 불편함에서 출발해, 일정한 의지를 가지고 노력했던 것들이 편안해진 순간, 우리는 다시 그 불편함을 경험하고 싶지 않게 된다. 익숙함은 자신감을 주지만, 동시에 위험한 오만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어.”라는 순간, 배움은 멈춘다. 익숙함은 안정감을 주지만, 성장을 막는다.
나는 평생을 항상 두려움과 불편함 속에만 머물고 싶진 않다. 매 순간 긴장하며 살아가는 건 오래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균형을 설정했다. 20대에는 두려움과 불편함의 비중을 80%, 편안함을 20%로 삼고, 39살까지는 그 기조를 유지하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이후 40대부터는 점진적으로 편안함의 비율을 높여, 50대쯤에는 30%:70%의 균형으로 살아보자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의식적으로 조금 더 불편함을 감수하며, 새로운 도전에 스스로를 열어두려 한다. 이건 커리어의 영역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늘 같은 것에만 머무르면 내가 진짜로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섬에 갇혀 ‘여기가 최적의 둥지야’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편안함에 익숙해진 순간, 변화와 도전에 보수적으로 변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나는 비버 사육사처럼 내가 정성껏 쌓아 올린 둥지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다른 둥지를 짓는 연습을 하려 한다. 내 안에는 둥지를 부수는 사육사와 그것을 지으려는 비버가 공존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은 의도적으로 사육사가 되려고 조금 더 노력한다.
결국 중요한 건 두려움과 익숙함, 그 두 감정 사이 어딘가에서 스스로 균형을 조절하는 일이다.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되, 그걸 이유로 멈추지 않고. 아는 것을 믿되, 그것만으로 안주하지 않는 태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를 세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두려움을 잃지 않되, 그 두려움에 삼켜지지 않는 것. 익숙함을 누리되, 거기서 무뎌지지 않는 것.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경계선 어딘가에 서 있으려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평생학습이다. 약간의 불편함과 적절한 편안함이 함께하는 삶 말이다.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제 해외출장도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