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과 공허함

by 유지경성

회사를 출근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내게 꽤 긍정적인 변화다.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수 있게 되었고,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돌아보는 순간들이 늘고 있다. 그 가운데 자주 떠오르는 두 감정이 있다. 관성과 공허함이다.


관성


나는 늘 바쁘게 살아왔다. 어쩌면 꽤 오래전부터였던 것 같다. 삶의 환경이 바뀌어도, 여전히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 ‘바쁨’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분주한 상태라기보다는, 좀 더 정서적인 차원에서의 바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혹은 ‘생산적인 방향’에 서 있지 않으면, 나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채찍질하게 된다. 그게 곧 나의 바쁨이고, 내면의 긴장이다. 무엇이든 의미 있어야만 하고, 쉬고 있을 때조차 그 쉼이 미래의 생산성을 위한 준비여야만 하는 감각.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 흐름은 어느새 내게 하나의 ‘관성’이 된 듯하다. 멈출 줄 모르는 움직임처럼, 내 마음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안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예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그런 채찍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무(無)의 상태’에 머무는 것을 꿈꿨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잘 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나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그것이 충분히 의미 있는지 자문하고, 스스로에게 작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싶고, 삶은 조금 더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지금은 그 방향으로 적응해 가는 중인 것 같다. 그렇게 나를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에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공허함


그렇다면 이 공허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예전에는 이 감정이 목표나 목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원하는 대학을 목표로 삼고 그곳에 입학하면 공허함은 사라질까? 또는 경제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면, 정말로 마음이 채워질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목표를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공허한 감정은 남는다. 어쩌면 목표와 행복은 별개의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목표를 이룰수록 더 분명히 깨닫게 되는지도 모른다. 내 삶에서 꽤 많은 것들을 이뤘지만, 내가 진짜 충만한가를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공허함이 단순한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을 충분히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늘 더 나아가야 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 그 안에서 나는 지금 이 자리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데일 카네기의 문장이 있다.

“Success is getting what you want. Happiness is wanting what you get.”
성공은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것이고, 행복은 내가 가진 것을 만족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보다는 내 안에 이미 있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빠르게 지나가는 삶의 흐름 속에서도 잠시 멈춰, 나다운 감각을 다시 찾고, 내가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는 시간. 이 시간이 언젠가,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스스로 조금씩 채워지고 단단해지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함을 바라는 모순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


그 완전하지 않음과 그로 인한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조금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내 인생 2기의 프레임을 다시 그려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