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를 방문하며
어제는 꽃동네라는 곳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면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본 적 있는 곳이다. 요양시설, 장애인시설 등 다양한 사회복지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누구나 사랑받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모두를 품고 수용하는 곳이다. 사실 꽃동네는 중고등학교 때 몇 번 방문했었다. 그때는 책에서 스치듯 보고 “이런 곳도 있구나” 하며 호기심이 동한 채로, 곧장 봉사활동을 예약하고 경험하러 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학생 때 다소 특이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대통령이 서거했던 날 반장이었던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솔선수범(?) 도망쳐 나와, 광화문으로 향했었다. 대학생들과 밤새며 봉사활동을 하고, 공중파 뉴스 인터뷰까지 타고 밤을 꼬박 새운 채 다음 날 등교했던 일도 있다. 특별한 정치적 성향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사회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걸 단순한 호기심으로 두지 않고 직접 움직이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철없고 다소 무모한 선택들을 존중해 주었던 부모님이 참 대단하다고도 느껴진다.
요즘은 마음과는 다르게 마음에 여유가 별로 없던 시기였는데, 우연히 나와 생각을 나누고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 용기를 냈다. 나에겐 정말 좋은 기회였다. 사실, 가서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정말 없다. 이번 봉사활동 동안 배정받은 곳은 ‘희망의 집’이라는, 지체장애우분들이 생활하시는 곳이었다. 몸이나 정신에 장애가 있어서 의사소통이나 사회적인 상호작용이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
아쉬웠던 점은, 내가 느끼기로는 그곳에 계신 분들은 분명 말을 알아듣고 자신의 뜻도 갖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는데, 내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단지 소통의 어려움이 아니라,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 컸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내가 ‘소수자’였고, 그분들이 더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백 번 물어봐도, 나를 잡아당겨도, 백한 번 웃으며 대답해 주는 마음을 나도 갖고 싶고 진심으로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나는 아직, 여전히 갈 길이 먼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특히 요즘처럼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기보다는, 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어떤 성취를 이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기에는 이런 경험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봉사활동이라는 건 겉으로 보면 내가 무언가를 주고, 누군가를 도와야 마땅한 일처럼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된다. 결국 봉사활동은 내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시간이라기보다는,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귀찮고 때론 힘든 일도 해야 하지만, 봉사활동은 여전히 나에게 꽤나 값진 경험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내 외장하드에는 오래전에 썼던 글과 사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중에서 꽃동네를 다녀온 뒤 남겼던 기록 하나를 다시 꺼내 보게 되었다. 그 글을 읽으며 느낀 건,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서른쯤 되면 완전히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서른을 오래전 넘긴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뭐가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그때 가졌던 순수한 마음이나 용기보다 지금이 더 흐려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꽃동네라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내가 봉사활동으로 배정받은 곳은 ‘호스피스’라는 병동이었다. 호스피스는 병이 더 이상 치료되지 않는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병원이긴 한데, 죽음을 기다리는 병원이라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곳이었다.
호스피스의 풍경은 내가 이전에 생각해 본 적 없는 곳이다. 밥을 드시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고, 말조차 하기 힘든 분들도 계셨다.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죽음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사실 이런 병동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라는 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 그리고 환자분들은 나와는 다르게 오히려 평온하고, 어떤 분들은 긍정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은 많지 않았다. 복도를 쓸고, 식판을 정리하고, 어르신 옆에 앉아 잠깐씩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정도였다. 어떤 분은 내 손을 꼭 잡고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해드린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무언가를 주러 간다고 생각해서 솔직히 귀찮은 마음도 들었지만, 돌아오는 길엔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받고 온 느낌이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평소엔 잘 떠올리지 않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곳에서 내가 진짜 했던 일은 누군가를 도운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게 된 일이었던 것 같다.
2010년 1월 29일 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의 기록
‘행복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태도다’ 내가 최근부터 좋아하는 말이다. 꽃동네에서 그와 닮은 문장을 다시 마주했고, 그 순간 어쩐지 마음이 조용해졌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간 건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그곳에서 나는 배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