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집을 방문하며 배운 점
지난주 꽃동네에 방문해 ‘희망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친구의 소개로 ‘천사의 집’이라는 고아원을 찾았다. 고아원을 방문하기 전, 사실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 특히 어린 친구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됐다. 인연이라는 건 짧든 길든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오래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선뜻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고민의 시작은, 과연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에서부터였다. 고아원은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는 공간이고, 타인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는 곳이다. 나는 과연 그 환경에 있는 아이들의 감정과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단지 봉사라는 이름 아래 스쳐 지나가는 방문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또 하나의 고민은,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조카도 없고, 평소에도 아이들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저 가끔 친구들의 아이를 지나가며 놀아주는 정도가 전부인 나에게, 아이들과의 교감은 낯설고 어쩌면 조금 어색한 일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관계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확신이 없었다. 나는 곧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내가 만들게 될 인연이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그 영향에 대해 쉽게 말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종교적 이유를 떠나 ‘하늘의 뜻’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흐름이나 인연에 수용하려는 편이다. 어떤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면, 내가 먼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응하고, 의미를 찾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생긴 루트변경이나 일정변경도 다른 의미로 즐길 수 있고, 인생에서도 무언가 안 되면 ‘다른 방향이 있겠지’ 하고 넘긴다. 이번 천사의 집 방문도 그랬다. 꽃동네를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아원은 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기회가 닿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내게는 늘 ‘기회이자 인연’처럼 느껴진다.
나는 남중, 남고, 공대를 나왔기에 비교적 남자아이들의 정서 발달 단계를 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학교 2학년 정도의 아이들을 볼 때는 기대치를 아주 낮게 잡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급식이’들, 딱 그 시기의 전형적인 모습에 맞는 수준을 예상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중학생이라고 해도, 남자아이들의 겉과 속은 좀 다르다. 부모님에게도 성숙한 표현을 하지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기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내면이 얕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도 그 시절 겉으로는 장난스럽고 철없어 보였지만, 내면에서는 생각이 많았고 꽤 진지한 고민도 있었다. 그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이 표현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렇지, 속마음까지 미숙한 건 아니라고 느낀다. 어쩌면 나도 지금까지 표현에는 서툰 편이니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오히려 내가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겉으로 표현되는 산만함이나 방방 뛰는 행동은 그 나이의 자연스러운 에너지로 보였고, 그 안에 담긴 긍정적인 기운과 생각의 깊이는 내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도 더 단단하게 느껴졌다. 희망의 집에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수녀님과 수사님, 그리고 사제분들을 보며 존경심이 들었고, 동시에 이 아이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내면이 생각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것도 느꼈다. 누군가가 아무리 긍정을 주입하려 해도 사람 마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데, 이 아이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밝았고, 마음속 흐름도 단단해 보였다.
나는 부모도 있고, 집도 있고, 친척들도 있는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지만,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 불만과 비교 속에서 살았던 기억이 크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그 환경에서도 꽤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들의 진짜 내면이 어떤지는 시간을 두고 알아가야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이렇게 교감하고 웃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이 친구들이 스스로를 잘 다듬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과 식사도 하고, 함께 볼링 게임도 했다. 생각보다 꽤 치열한 게임이었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게임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아이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더 챙겨주고 싶고, 잘 자라게 해주고 싶고, 나의 영향을 통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무엇보다 그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아이들과 같이 했다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정말로 아들이 있다면 이렇게 같이 놀고 대화하며, 꽤 재미있고 따뜻한 시간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은 상상도 자연스럽게 스쳐갔다.
이 생각의 이면에는 어릴 적 떠올렸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바쁜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퇴근 후에도 부모님은 대부분 공부를 하시거나, 일을 더 하셔야 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부모가 되면 아이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야지.’ 바쁘고 무거운 삶보다도 조금 더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실제로 내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장래희망란에 연구원이나 공무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때 생각했던 삶의 방향과는 꽤 다른 방향으로 흘러온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방향이 내가 원래 추구하던 가치와 얼마나 가까운가. 그런 질문이 요즘 머릿속에서 자주 맴돈다. 아마도 지금이, 내가 처음 그렸던 삶의 그림에 다시 가까워질 수 있도록 방향을 조금 수정할 때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면, 이런 가치관은 내 엄마로부터 온 것이 클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행동에 종교적인 믿음이나 이유가 있는 분은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이 큰 사람이다. 우리 가족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엄마는 주변을 챙겼다. 어린 시절, ‘소망의 집’이라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셨고, 지금 돌이켜봐도 꽤 파격적인 결정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말이 안 된다.
예전에 누나의 친구들 중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던 친구가 있었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자주 이사를 다니거나 집에 머무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누나보다 먼저 그 친구에게, 우리 집에 와서 지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함께 지냈다. 또 친척 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다. 엄마의 친한 친구 중에 교회 사정이 어려워진 목사 부부의 아들이 잠시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지낸 적도 있었다.
웃긴 건, 누나도 나도 그 모든 상황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우리 집이 뭐 대단히 넓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아파트였는데도 말이다. 그게 그냥 우리 가족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일단 결정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같이 지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그 메커니즘 그대로다. 엄마는 먼저 움직이고, 우리는 그냥 수용한다.
그래서 나와 누나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의미의 방법이라기보다는, 단지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선입견으로 먼저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도와준다는 마음을 내세우기보다,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되 아픈 부분은 굳이 묻지 않고, 스스로 꺼낼 때까지 시간을 주는 것.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어떤 사람과는 끝까지 가까워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제일이라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원해서 어려움에 처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어떤 사람의 과거보다는 그 사람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과거의 이유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돌아보는 사람보다는, 지금 자리에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 더 끌린다. 환경이 어렵다고 해도, 그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번 희망의 집에서 만난 아이들은 분명히 그랬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고,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단단한 내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잘 자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자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직접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천사의 집 방문을 계기로,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주 오래전 내가 어릴 적 품고 있던 그 막연한 감정들을 다시 꺼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앞으로 장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부분도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부모님이 종종 말하곤 했다. 부모도 아이를 키우면서 같이 성장한다고. 어쩌면 나도 이번 만남을 통해 아주 조금은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동해바다의 아침 바람을 맞으며 메모장 하나 켜고 이렇게 글을 적는 일, 생각보다 꽤 기분 좋은 일이다. 바람이 시원하고, 마음도 덤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