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과 반작용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by 유지경성

뉴턴의 제3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
To every action, there is always an equal and opposite reaction.

Newton’s Third Law


이 간단한 법칙은 세상의 거의 모든 물리적 움직임을 설명해 준다. 내가 발을 땅에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도, 손으로 무언가를 밀었을 때 밀려나는 것도 결국 이 법칙 덕분이다. 세상은 힘이 작용하면 반드시 되돌려주는 구조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이 원리가 사람 사이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물체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반작용은 물리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섬세한 감정 위에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고맙게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다. 같은 행동을 해도 누구에게는 배려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간섭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까, 똑같은 말을 해도 결과는 늘 다르게 돌아온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반응이 나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내가 건넨 말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나도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바꾸게 된다. 말이 오가고, 반응이 오가면서, 서로가 조금씩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런 흐름이 반복되면서 관계는 점점 만들어진다. 관계라는 건,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서로의 반응에 따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나도 그 사람의 반응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서로가 조금씩 바뀌고, 적응하고, 조율되면서 진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석은 바라보는 사람의 깊이에서 온다.


살면서 나의 생각이나 방향성, 혹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누군가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다. 그런데 가끔, 내가 품고 있는 가치나 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고, 사려 깊게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순간이 올 때면 나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내가 가진 생각을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그 안의 맥락과 의도를 짚어가며 바라봐주는 그 시선에 존중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상대는 내게 “생각이 깊다”라고 말해주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속에서는 “당신이 더 깊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깊이만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나의 말과 태도 속에서 어떤 결을 읽어내고, 어떤 고민을 포착해 낸 그 사람은, 분명 스스로도 많은 생각과 시간을 경험해 온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가 인정받았다는 기쁨보다는, 그 사람의 깊이를 눈앞에서 마주한 듯한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해석을 건네는 분들을 종종 있다.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 깊은 사고를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다. 복잡한 걸 좋아하지도 않고, 머릿속으로도 단순하게 정리하는 걸 선호한다. 그런데 그런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정서적 결을 읽어내고, 맥락을 짚어내며, 나도 의식하지 못한 의미를 발견해 내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내가 놀라게 된다.


그리고 내심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미 내가 보지 못하는 영역을 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건 단순한 해석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인격적 깊이와 감정의 세심함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섬세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 앞에 서면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자세를 느끼게 된다.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최근에 저녁자리에서 친한 형과 이야기하다가 나온 주제다. 사람을 바꿀 수 있는가? 사람은 종종 타인의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에 영향을 받는다고들 한다. 어떤 문장을 읽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우연한 계기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들도 흔히 들린다. 물론 그런 변화는 실제로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그 변화의 핵심이 "외부 자극 자체"에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즉각적으로 바꾸는 일은 어렵다. 나만 봐도 그렇다. 누군가 내게 어떤 조언이나 방향을 제시할 때, 그 말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더라도, 이상하게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반감이 먼저 드는 경우가 있다. 그 감정은 종종, 그 조언의 내용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기도 전에 나를 그 길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특히 그 조언이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방향과 정반대라고 느껴질 때, 마음속의 저항감은 더 크다. 익숙한 속도와 익숙한 방향을 따라가고 싶은 관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외부의 자극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했더라도, 그 말은 씨앗처럼 조용히 남아 있다가, 내가 그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 불쑥 떠오르곤 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울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안에서 그 싹이 자라날 준비가 되고, 햇살처럼 또 다른 계기들이 겹쳐졌을 때,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그 조언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변화는 그렇게, 마음속에 먼저 머무른 뒤에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짜 변화는 그 사람이 이미 스스로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는가, 내면 어딘가에서 방향을 찾고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누군가의 말이 전환점이 되었다면, 그 말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생각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너의 말 덕분에 변할 수 있었어"라고 말할 때, 그 공을 나에게 돌리기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 이끌어낸 용기와 내면의 움직임을 더 크게 본다. 외부의 자극은 햇빛과 적절한 빗물일 수 있지만, 변화를 이끄는 진짜 씨앗은 늘 그 사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란 밖에서 오는 자극과 안에서 움직이는 의지가 맞물릴 때 비로소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그런 변화는 자주 오지 않는다.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드물다.


하지만 그 드문 순간은 실제로 존재한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 한 줄이, 한 번의 눈빛이, 이미 마음속에서 오래 맴돌던 어떤 감정을 흔들어 깨울 수 있다. 단, 준비가 되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씨앗을 남긴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씨앗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씨앗이 정말로 건강한 것인지, 결국 자랄 수 있는 "품질 좋은 양품"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애초에 나는 그런 현명함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 방향을 고민할 때, 나는 그 결정이 충분히 그 사람 자신의 고민과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전제는 늘 존중한다. 그 위에 아주 작게, “내가 정말 당신이었다면, 이런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 같아”라는 정도의 피드백을 조심스럽게 더할 뿐이다. 그 말이 씨앗이 될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메아리가 될지는 결국 그 사람의 기호, 마음 상태와 삶의 타이밍 등 그 사람에게 달린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식의 피드백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씨앗을 줄 수 있는 상대와 이야기 나눌 때 말 한마디, 질문 하나가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다가 언젠가 꽃을 피운다는 걸 경험해 왔다. 때로는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삶의 어딘가를 다시 마주할 때, 그때 들었던 말이 새롭게 의미를 갖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순간들이 모이면 관계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서로의 삶에 남는 무언가가 된다.


그래서 나는 점점, 넓은 논이나 밭처럼 다양한 씨앗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씨앗을 정말 심을지, 어떤 걸 거를지는 내 몫이지만, 받아들이는 일 자체를 닫아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생각과 시선, 낯선 피드백이 오히려 내 안에서 더 단단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줄 때가 있다. 생각을 심을지는 몰라도, 받아들이는 마음은 넓고 단단했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듯 정의라는 것도 결국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걸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일들이 세상엔 훨씬 많다. 법이나 제도를 명백히 어긴 것이 아니라면, 일부 도덕적인 영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택과 생각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방향과 가치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계관에는 영원한 아군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곳이라는 걸 나름대로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한때는 나와 너무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가치관이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내 옆에 있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늘 나와 맞는 줄 알았던 사람이나 생각이 어느 순간 멀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나도 변하고, 관계도 변하고, 정의와 옳음의 기준도 결국 시간과 맥락 속에서 계속 새롭게 쓰인다.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던진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남기도하고, 누군가의 말이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 모든 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가,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남겨지는 것도 아니고, 의도하지 않은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누군가의 기억에 머물기도 한다.


한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가장 자주 연락하고 시간을 보내는 세 사람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떤 땅에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어떤 햇살을 받으며 자랄지는 오직 나만이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