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

또 하나의 인연

by 유지경성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비행기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거의 없다. 출장이나 장거리 이동이 체력적으로는 분명 쉽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는 일종의 ‘대기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잠시 멈춰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잦은 비행이나 긴 비행을 하더라도 큰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업무든 개인적인 이유든 해외를 자주 오가며 자연스럽게 알게된 감각이고,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쓰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나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 있다면, 아이와의 교감에 대한 고민이었다. 7월, 꽃동네 천사의 집을 방문하면서 알게 된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있다. 출국 전에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다시 연락을 주고받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나는 원래 어떤 인연이든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굳이 이유를 만들기보다는, 그냥 그 인연을 자연스럽게 이어가 보려고 했다. 특히, 내가 그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중학교 2학년쯤 되는 아이는 이제 제법 정서적으로 자립해 가는 시기다. 어릴 때부터 계속 관계를 쌓아온 사이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보고 싶다"라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그래서 처음 복지사 선생님께서 "멘토링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을 때도 나는 바로 대답하기보다는, 아이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고 싶었다. 실제로도 아이가 이번 만남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시설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를 계속 확인했다. 다행히도 아이가 "꼭 만나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서는, 출국 전에 한 번 더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리고, 아이와 만나면서도 아이와 가까워지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도 자주 들곤 한다.


이번에는 시설이 아닌 서울에서 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직접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왔고, 우리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뭔가 대단한 걸 하진 않았지만, 나는 아이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나부터도 즐겁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실내 야구장에서 같이 공을 치고, 근처 풋살장을 빌려 공도 찼다. 즐겁게 놀면서 조금씩 서로에 대한 거리도 줄어들었던 것 같다.


또 하나 해주고 싶었던 건, 아이가 공부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일이었다. 어떤 계기가 생기면, 생각보다 마음이 쉽게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아이에게 물어보니 영어가 재미있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서점에 들러 동화책 몇 권을 골랐다. 하루에 딱 한 장이라도 좋으니, 꾸준히 읽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도 예전에 영어가 전혀 재미없었을 때가 있었지만, 학문이나 시험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 접근하면서 흥미가 붙기 시작했었다. 언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익힌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재미있어졌던 그 감각을, 아이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책을 건넸다.


아이와 소통을 하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해 새로운 특이점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생각보다 내가 대화하거나 행동할 때 아이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말을 할 때도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릴지, 어떤 느낌으로 전달될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대화를 마친 뒤에는 아이가 어떻게 이해했을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묻게 된다. 단순히 놀이를 할 때조차도, 이 활동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살펴보게 된다.


이번에는 특히 출국을 앞두고, 아이와 멘토링을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형과의 만남이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멘토링을 받고 싶은지”,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지지를 받고 싶은지” 등. 질문은 가볍지만, 그 대답을 통해 아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의외로 아이는 차분하게, 그리고 성숙하게 말했다. “아직 어리고 생각도 성숙하지 않지만, 형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잘 성장해나가고 싶다”라고 한다.


나는 아이에게 멘토링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을 갖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가족은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사이다. 보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듣기 싫은 잔소리도 있지만, 결국 감정을 풀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존재,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존재. 누구의 기호에 따라 생겼다 사라지는 관계가 아니라, 늘 곁에 있는 관계. 나는 아이에게 이 멘토링도 그런 의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겠다”, “싫다고 해서 쉽게 끊지는 않겠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멘토링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면 우리 사이에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볼 것. 둘째, 어떤 학과든 어떤 대학이든 일단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해 볼 것. 셋째, 술과 담배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멘토링 관계는 ‘가족’이라고 인식하고 대할 것.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네 가지 약속을 받아들였다. 어떤 조건으로 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나는 아이가 정말로 성인이 되어서 자립할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아이에게 인정과 사랑을 베푸는 것은 조건부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 관계가 나에게 또 다른 시작이자, 새로운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아주 조금은, 정말 1%라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아이에게 내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믿는다. 나 또한 이 아이를 거울삼아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싶기도 하다.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드렸더니, “절대로 무언가를 얻을 생각으로 선행하지 말고, 주는 것 그 자체로 만족해라. 그걸로도 충분한 거다”라고 하셨다. 무언가 배우고 내가 성장한다는 생각조차도 넣어두고 아이에게 어떤 삶의 의미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야겠다고 마음을 바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