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에서 이기자.

by 유지경성

요즘 나는 반복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회사에 다닐 때가 가장 다이나믹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프로젝트, 다양한 산업과 고객,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온 뒤로 주변 사람들은 내 생활이 훨씬 다채롭고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학교 생활 역시 각자의 색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생활의 모습은 각자의 방향성에 따라 정해진다. 어떤 이는 매일 파티를 즐기고, 또 다른 이는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그건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나 역시 나만의 색채를 유지하려고 한다. 최대한 다채로우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균형을 지키려는 것이다. 때로는 공부와 사색의 시간을 줄여보려 애쓰기도 하지만, 여전히 몸에 밴 관성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하는 과정은 나에게 늘 새로운 생각과 자극을 선사한다. 그러나 일이든, 학교든, 운동이든 어느 곳에서든 누군가의 하루가 매일 새로울 수는 없다. 즉, 짧은 기간 동안은 사람도, 일도 새로울 수 있지만, 결국에는 익숙해지고 그 새로움은 반복 속으로 흡수된다.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나는 매일이 새롭고 배움을 주는 하루라면 그것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어떤 강연이나 여행에 참여했을 때 받은 울림은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된 것은, 반복이 불가능한 것들은 대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하루 이틀 세계 챔피언처럼 한다고 해서 근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한 번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고 몸이 달라지지 않는다. 공부 또한 그렇다. AI처럼 단번에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수익성이 좋은 프로젝트를 한 번 수행했다고 해서 회사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반복이 가능해야 하고, 그 반복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과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무료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반복만이 결국 큰 성취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낸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과정을 반복하는 일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반복하다 보면 쉽게 싫증이 나기도 하고, 꾸준히 버틸 인내심이 부족할 수도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사람이 본능적으로 지니는 ‘비교하는 마음’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나는 주로 결과를 중심으로 비교했다. 내가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성과에만 눈길이 갔다. “누구는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더라. 그런데 그 사람은 집안이 유복해서 가능했던 거야.”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결과만 바라보는 태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바로 그 사람의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힘든 과정을 견뎌내고 성공한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그 결과 뒤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라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단순한 연결고리로 성공과 과정을 이어 붙이는 대신, 그 안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시선을 달리하면 전혀 새로운 삶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조금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자. 내가 존경하는 워렌 버핏의 사례를 붙여보면 이해가 쉽다. 워렌 버핏은 10대와 20대 시절부터 투자를 즐겼고, 본격적으로 파트너십을 설립한 것은 1956년, 그가 25살 때였다. 그는 자신의 돈 약 100만 달러와 친척·지인의 자금을 모아 파트너십을 시작했다.


이 지점을 두고 “버핏도 결국 금수저라서 성공한 것 아니냐”라고 단순하게 결론 내리는 시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론 자금이 그의 출발을 가속화한 요소 중 하나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모든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부유한 집안 출신임에도 가업을 망치는 사례는 흔하다. 그런 점에서, 무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투자의 귀재’라는 명성을 지켜온 워렌 버핏의 일상과 습관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누군가는 “돈이 많으니 접대나 로비를 통해 정보를 얻었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버핏은 늘 강조해 왔다. 투자자로서 필요한 정보는 월가 같은 정보의 중심지가 아니라, 공개된 자료 속에서 매일같이 공부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나는 그 말을 대체로 신뢰한다.


버핏의 하루와 업무 방식을 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1) 매우 규칙적인 출퇴근,
(2) 사람을 만나기보다 사무실에서 읽고 사고하고 분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
(3) 집이나 사치품 같은 번거로운 것들과 거리를 두며 검소함을 유지하는 것,
(4) 소수의, 신뢰할 수 있는 깊은 관계를 지키는 것.


언뜻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막상 실천해 보면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이다. 찰리 멍거가 묘사한 워렌 버핏의 모습도 이와 일치한다. 그는 한 번 책상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자리를 뜨지 않고 읽으며, 이해한 내용은 모두 기억하고, 그것들을 집요하게 연결해 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백조 원을 가진 현재 상태에서도 새로운 정보에 여전히 흥미를 느끼고, 평생 학습을 이어가는 검소한 태도. 나는 이것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공 비결이자, 버핏이 걸어온 진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과 비교하고 그리고 좋아하는 또 다른 인물은 골드만삭스의 짐 도노반이다. 그는 베테랑 IB로서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골드만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수많은 딜을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단순히 이력만 본다면 MIT와 하버드 같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IB에서 성공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훨씬 흥미롭다.


나는 가끔 이런 비교를 나 자신에게 적용한다. 만약 내가 짐 도노반처럼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지금 내가 쌓아온 업적이 그가 젊었을 때보다 앞서 있는가? 아니라면 그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또 나는 짐 도노반의 현재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그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취보다는 그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내 삶과 비교하며, 내가 진정 그 성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는지 점검하게 된다.


짐 도노반은 이미 커리어와 명예를 모두 가진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책과 뉴스를 읽고, 오전부터 밤까지 일한다. 그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구체적으로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시간’만 보더라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과연 그를 따라잡고 있는가?”


내가 그보다 더 똑똑하고 효율적이지 않다면, 결국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만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의 루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세운 목표가 정말 현실적인지, 혹은 단순한 바람에 그치고 있는지 다시금 점검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과정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큰 전제는 있다. 모든 성실한 과정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성공할지 알 수 없는데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한 사람의 인생관이기에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단순히 성공한 사람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의 방식’까지 주목해야 한다. 물론 세습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태어난 배경과 부의 힘으로 이룬 성취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률적으로 극히 낮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이 수백만 번 반복된다면 “이번 생은 이렇게 태어났으니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기에 이 단 한 번의 삶에서 내가 원하는 목표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면, 최소한 롤 모델의 ‘과정(하루)’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에 단 몇 센티미터라도 더 나아가야, 비로소 그런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경주에는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다. 진정한 승리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살아가며 삶 자체를 즐기는 데 있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이 찾아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큰 보상이나 성공은 어디까지나 ‘추가적인 행복’ 일뿐, 내가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