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
친한 친구가 10월에 결혼한다. 정말 가까운 사이지만, 나는 8월부터 런던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자 친구의 근무지인 동해바다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오늘 점심에는 조금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내가 유학을 가게 될 학교의 선배이자, 예전에 프로젝트에서 고객사 대표로 마주했던 분과 가볍게 식사를 했다. 그 프로젝트는 반도체 회사 인수 자문 건이었고, 고객사는 사모펀드(PE)와 전략적 투자자(SI), 두 곳이었다. 나는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던 SI 쪽의 니즈에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그로 인해 PE 대표님과는 관계가 썩 좋지 못했다.
프로젝트 말미에, 내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솔직하게 담은 편지를 따로 드린 적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오해가 풀렸고, 알고 보니 그 대표님은 내가 이번에 입학하는 학교의 직속 선배이기도 했다. 그 인연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든든한 조언자이자 좋은 선배로 남아 있다.
오늘 점심 자리에서는 선배님의 20여 년 전 유학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지금 내 유학 결정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동해로 향하는 KTX 안에서 그 생각들을 천천히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아주 오래전 유학을 했던 한 대선배님께서 말했다. “유학의 가치는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준비 과정에 있다.”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유학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졸업 후 얻게 될 학교의 이름값? 준비 과정에서 얻는 공부의 지식? 혹은 영어 실력의 향상? 이 모든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는 시간이다. 유학은 누가 시켜서 가는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길이다. 특히 30대의 유학은 지금까지 쌓아온 기반을 내려놓는 일이기에 그 선택이 더 어렵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막연하게 유학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왜 가야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대신 직장생활을 하며 유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꾸준히 고민했고, 그 이유가 스스로 납득될 만큼 정리되었을 때, 비로소 유학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유학 준비는 생각보다 번거롭다. 나는 이 과정을 어렵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단한 일도, 반드시 똑똑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의지를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야근이 잦은 직장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면, 쉬는 시간을 포기하고 뭔가를 준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분명한 목적 없이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준비 과정도 간단하지 않다. GMAT이나 GRE 같은 시험을 공부해야 하고, TOEFL이나 IELTS 같은 영어 시험도 동시에 치러야 한다.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까지 겹치면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또한, 여러 번 시험을 친다고 점수가 크게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어릴 적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영어로 시험을 보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또, 단기간에 끝나는 준비가 아니다. 사람에 따라 3개월, 6개월, 혹은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유학 준비는 때로 ‘계륵’ 같다. 쉽게 포기할 수도 없고, 계속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3년 전, 나름대로 유학을 준비해 보겠다며 소규모 그룹을 만든 적이 있다.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다들 성실한 편이라 서로 도우며 잘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의지를 품는 것과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결국 그 모임에서 실제로 유학을 떠난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 유학에 성공한 2명 중 한 명은 MIT Sloan MBA, 다른 한 명은 Northwestern Kellogg MBA에 진학했다.
유학을 준비하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하필 유학인가. 이 질문에 끝까지 답하지 못하면 유학 준비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어야, 중간에 흔들리지 않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입학을 결정짓는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과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M&A 프론트 업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도전적인 일이다. 하나의 딜을 발굴하고, 그 회사와 산업을 분석하고, 관련된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검토하고 밀고 당기다 보면, 딜이 하나 성사되기까지의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시장을 다루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물론 업무 강도는 높다. 하지만 그만큼 몰입할 수 있고, 일에서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나는 더 이상 순수한 실무 레벨이 아니다. 점점 더 내 일은 ‘영업’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예전에는 엑셀과 PPT에 내가 직접 분석한 내용을 담고, 숫자를 계산하고 분석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면, 지금은 고객과의 관계나 딜 소싱에서의 기회 포착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실무 중심의 영업이긴 하다. 하지만 직급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관계 중심의 업무가 될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이 일을 계속한다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내가 정말 이 일을 앞으로도 오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미래는 이런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완전한 확신은 아니다. 한 50~60% 정도의 확신, 그 정도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에서만 고민만 반복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시기도, 환경도, 마음의 컨디션도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결정을 내리게 됐다.
내 마음속 갈증과 니즈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르다. 마찬가지로, 내가 싫어하는 것과 못하는 것도 전혀 다르다. 주변에서는 내가 영업에 잘 맞는 사람 같다고들 한다. 사람도 많이 알고, 관계도 좋아 보인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아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의 관계 깊이나 밀도를 따져보면, 그렇게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는 본래부터 그렇게 사람과 쉽게 가까워지는 편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선배 중 정말로 사람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을 보면, 나와 참 다르다고 느낀다. 그 형은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주변에서 기꺼이 도와주려 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전화를 주고받고, 술자리도 자주 만들고, 그걸 또 즐긴다. 반면 나는 특정 사람과 깊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걸 더 선호하고, 불특정 다수와 가볍게 자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다. 술자리도 즐기지 않고,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반대로, 나는 스스로 산업을 스터디하고 글을 읽고, 분석하는 것처럼 조금 더 고립된 환경에서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이런 내 성향이 과연 자문사라는 업의 본질과 맞는가에 대해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자문사는 결국 누구와도 잘 지내야 하는 업이다. 영업이 중심이고, 고객 관계가 핵심이다. 그런 조직에 오래 있으려면, 결국 조직이 흘러가는 방향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그 흐름이 내 본성과 다르다면, 언젠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올라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올라간 사람들의 말로를 보면 썩 좋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 걸 보면서, 이 업의 흐름과 내 결이 다르다는 걸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됐다.
결국은 이런 질문으로 돌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건 단순한 경력 설계가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나에게 자문업의 본질은 고객이고, 그리고 영업이다. 그 본질이 지금의 나와는 다소 어긋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투자자 측면에서 철학을 가지고 업무를 해보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
맞는 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의 성격과 결이 다르다고 느껴진다면, 가장 빠른 해법은 이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학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지금 확신도, 실력도 모두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내 진로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문사라는 자리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고객군을 만나면서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회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고, 그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도 키울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내 직업의 큰 장점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속 커리어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지금도 정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답을 하나씩 지워가며 좁혀나가는 중이다. 선택지를 줄여가는 방식으로 길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무엇이 나의 길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둘째, 현실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에 맞게 커리어를 전환하기에는, 지금 내 실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단순히 하고 싶다고 해서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벌이라는 조건이 요구될 수도 있고, 어떤 자리에는 언어 능력이나 네트워크, 혹은 여러 종류의 포지셔닝 능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그 문턱에 다가가기엔 어딘가 조금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이직이 아닌 유학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단순히 공부를 하러 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적절한 시점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안에 있는 가능성과 에너지를 다시 정돈해 볼 수 있는 시간으로서 말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스스로에게 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서른이 되면, 1~2년 정도는 쉬어가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 사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늦어진 건 맞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때 했던 다짐을 꺼내어 나에게 뒤늦은 멈춤을 주기로 했다. 단지 쉬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멈춰 서서 방향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으로. 지금이 아니면, 더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하더라도, 여전히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정말 괜찮은 선택일까. 오랜 검토를 마쳤다고 생각해도, 마음 한쪽에서 끊임없이 질문이 올라온다. 필요한 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대출이라면 상환 계획은 어떤가. 이 돈을 주식에 넣었다면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유학에 드는 비용만큼의 결과를 정말 얻을 수 있을까. 졸업생들의 취업 상황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는 말들, 해외에서의 정착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적인 조언까지, 이런 모든 고민과 말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대답을 요구당한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비유가 있다. 바닷가 모래 위에 알을 낳는 바다거북 이야기. 백 개의 알 중 살아남는 건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유학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백 명이 고민하고 준비하지만, 끝까지 실행하고 버티는 사람은 그중 몇 안 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선택이, 메타버스 안의 백 명 중 한두 명처럼 드문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기 때문에 더 단단해지고 싶어졌다. 더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더 정직하게 지금을 마주하려고 한다.
이 결정은 생각보다 많은 포기를 요구한다. 안정된 수입, 일상적인 관계, 익숙한 업무 루틴, 그리고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 그 포기의 무게보다, 지금 내가 향하는 방향과 그 목적의 가치가 더 크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유학은, 아무나 준비할 수는 있어도 아무나 실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그 고민을 결국 행동으로 연결해야 끝이 보인다.
나는 주변에서 유학을 고민하거나,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늘 말한다. 일단 해보라고. 너무 많이 생각하기 전에 원서를 넣어보라고. 면접이라도 보라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더 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직 제안을 받고 나서 지금의 자리에 더 남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있고, 지원서 한 장 써보면서 자신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는 간판이 중요한지, 보상이 중요한지, 혹은 일의 의미와 조직의 문화가 중요한지. 그 모든 걸 스스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그 과정 속에 있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특히 30대의 유학은 단순한 경력 전환이 아니다. 경제적인 여건, 연애와 결혼, 가족환경까지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어렵고, 더 고민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선택도 결국 하나의 투자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안 되는 이유를 수없이 찾아서 스스로를 묶기보다는, 단 하나라도 내가 이 길을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 하나에 집중하고 실행하는 것. 결국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라고 믿는다.
투자 검토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리스크와 제약 조건, 안 되는 이유에 집중하면 그 투자는 절대 실행되지 않는다. 결국 딜을 성사시키는 건, 아주 제한적인 1~2개의 Edge와 그 기회를 밀어붙이는 투자자의 확신과 의지다. 나는 인생의 큰 결정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언제 봐도 좋다, 바다는.